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부계가족으로 가부장제의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다. 현실의 거울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이는 다르지 않아 드라마 속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가족 모두의 위에 서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드라마 속 어머니들이 점차 뿔을 내고 자신의 인생을 찾으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반면 아버지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온가족의 앞에 서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던 아버지는 어디 가고 가족들의 뒤에서 움츠리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 돼버렸다. 드라마 속 새로운 아버지의 군상이다.
# 엄마는 뿔났다, 그런데 아빠는?...불쌍하다
엄마가 뿔났다. 전국민의 어머니 김혜자, 한자씨가 쌓고 쌓았던 분노와 짜증을 한꺼번에 폭발해내며 파업을 선언했다(KBS '엄마가 뿔났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지만 그녀는 결국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가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
뿔난 엄마는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뿔 앞에 아버지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맴돌았다. 강경한 듯 말을 내뱉었지만 실은 늘 아내 앞에 약했고, 자식 앞에 한없이 부드러웠던 우리의 귀여운 아버지는 기대고 섰던 동지를 잃고 중심을 잃은 채 흔들렸다.
병까지 얻으며 휘청이는 아버지에 시청자는 "불쌍하다", "우울해보이니 더 안타깝다"며 동정표를 던졌다. 불만을 토하던 어머니에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동조하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아버지에는 할 말을 잃었다.
특히 백일섭은 드라마 속에서 무뚝뚝한 모습으로 '아버지는 하늘'이라 말하는 듯한 모습을 그렸었던 적이 있기에 불쌍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메시지를 더한다. 변한 캐릭터만큼이나 변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생활의 거울' 일일극, 작아진 아버지를 그리다.
일일극은 '생활극'이라는 말답게 실생활을 반영한다. 월화극, 수목극, 주말극, 사극 등 많은 드라마들이 있지만 매일을 시청자와 함께 하는 일일극만큼 일상과 친밀한 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일극에서도 아버지는 그 위상을 잃고 작아졌다. KBS 1TV '너는 내 운명'의 아버지 대진(장용 분)은 태산보다는 그림자 같은 아버지다. 최근 집안에 아들인 태영(이필모 분)의 결혼과 새벽(윤아 분)의 입양이라는 큰 일이 있었지만 의견을 명확히 제시하며 목소리를 키우기보다 갈등의 중심에서 빗겨선 채 어머니의 의견을 따랐다.
MBC '춘자네 경사'의 아버지 태삼(임현식 분), 만식(노주현 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이유, 소심하다는 이유로 어머니 앞에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가족의 가장이지만 의결권은 어머니에게 넘긴 지 오래다.
일일극 속 캐릭터로 '요즘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 이렇다'고 딱 잘라 정의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유독 눈에 띄는 일일극 속 아버지의 모습들에는 세태가 반영돼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극 속 아버지, 퓨전 바람 타고 땅으로
사극, 과거의 이야기다. 과거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에 입각한 나라로서 칠거지악이라는 것까지 두었던 만큼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경우 아버지는 강철같이 강하고 딱딱하며 차가운 사람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퓨전의 바람이 불며 사극도 변했다. 여전히 전통사극이 그 명맥을 잇고 있지만 요즘의 사극은 구워진 인절미처럼 고소한 매력은 여전한 반면 좀 더 말랑해졌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 집안의 가장, '하늘'이라던 아버지의 캐릭터도 변했다.
종영한 SBS '일지매'의 쇠돌(이문식 분)이나 KBS 2TV '최강칠우'의 남득(임하룡 분) 모두 가부장보다는 친구 같은 아버지다. 게다가 쇠돌은 사랑과 미안함을 이유로 어머니 앞에 약하며 남득은 기센 어머니와 장모 등쌀에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다. 아무리 퓨전이라지만 현대극의 트렌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과거의 사극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일극, 사극, 주말극, 미니시리즈 할 것 없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졌다. 어머니가 어깨를 당당히 펴고 세상에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시작했다. 반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작아졌고 아버지 목에 선 핏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기러기 아빠, 소외된 아버지 등 아버지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 속 위상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눈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드라마 속 기세등등한 어머니 뒤에 슬픈 아버지의 군상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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