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격'. 송필근(22)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어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햇살이 조금 밖에 안 드는 5평 반지하 자취방에서 스물한 살 청년은 드디어 이룬 꿈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KBS 개그맨을 꿈꾼 지 꼬박 7년만이었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 ...'과 '놈놈놈' 코너에 출연 중인 송필근은 2012년 KBS 2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다른 신인 개그맨처럼 단역으로 얼굴을 간간히 비추다 '신사동 노랭이'로 처음 코너 신고식을 했다. 이어 '... ...', '놈놈놈' 코너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고 있다. 어린 나이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능청스런 연기가 그의 장점. '... ...'에서는 유민상의 사돈으로, '놈놈놈'에서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잘생긴 세 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추파를 던져 곤혹스러워하는 캐릭터다.
2005년 중2 때 '개그사냥' 출연한 '개그신동'
송필근은 이제 '개그콘서트' 2년차지만 그가 TV에 얼굴을 비춘 것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KBS 2TV '개그사냥'에 출연, 활동한 '개그신동'이었다. 어릴 때부터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데 능했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어요. 저와 얼굴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한 아버지는 모 반도체회사에서 꽤 높은 지위에 계시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하겠다고 회사를 나오셨어요. 어머니는 당시 그런 아버지에게 '그래, 당신하고 싶은 것 해'라고 아무 불평도 안 하셨대요. 어릴 때 제가 '울엄마' 같은 코너 따라하며 개그맨 흉내를 낼 때도 잘한다고 응원해주셨어요. 유치원 졸업할 때 다른 아이들은 '개근상'이나 이런 상 받는데 선생님이 제게는 '이야기상'을 만들어주셨어요. '재밌는 이야기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줬으므로...' 뭐 이렇게 상에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웃음)."
학창시절 수학여행 등 학교행사에서 그는 제 발로 나서 MC를 맡고는 했다.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개그맨을 꿈꾸는 친구들 중에는 개그맨을 발판으로 예능MC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많은데 저는 공개 코미디가 좋았어요. 무대 위에서 콩트로 웃기는 게 좋았죠."

그의 개그맨을 향한 도전은 중2 때 절정에 이르렀다.
"2005년 중2 여름방학 때 아무것도 모를 때 막연히 개그맨 데뷔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 데리고 인천에서 지하철 타고 여의도까지 와서 오디션을 봤습니다. 당시 서수민PD가 연출하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린 친구들이 하니까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합격을 하고 여름방학 때는 '개그사냥'에, 개학하고 학교로 갔다 다시 겨울방학 때 '개그사냥'에 출연하는 식으로 개그를 했죠. '개그콘서트'에 합격하고 선배들을 만났을 때 '아 네가 그 때 그 중학생이구나'하고 기억하는 분들도 제법 있었어요."
인천에서 충남 조치원 성남예고 연극영화학과 진학한 그는 입학 초반에는 개그하기가 힘들었다. 개그보다는 연기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 하지만 '끼'를 주체할 수 없어 개그에 흥미가 있는 친구들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었고, 지역축제에서 개그 공연을 펼치며 '끼'를 발산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남궁경호는 이후 대학(인덕대)에 이어 '개그콘서트' 공채까지 함께 합격하며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스스로 보기에도 개그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생각됐지만 KBS 개그맨의 길은 쉽지 않았다. 2년간 고배를 마신 뒤에 그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자신했지만 KBS 개그맨시험 2년 연속 낙방..2012년 '수석합격'
"자만했었나 봐요. 중학생 때 이미 TV에 출연했으니 개그맨 시험 보면 바로 붙을 줄 알았던 거죠. 어릴 때는 개그맨 시험 보는 데 왜 나이제한이 있나하고 답답해하기도 했어요. 세상을 몰랐던 거죠. 대학에 들어와 스무 살에 KBS 개그맨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리고 이듬해에도 떨어졌죠. 작년(2012년)에 세 번째 시험을 볼 때는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군대 문제가 있었거든요. (남궁)경호한테 '군대 갔다 올까. 어차피 KBS는 군필자를 좋아한다는 데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는 했어요. 그러다 그냥 가기에는 억울해서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시험이라 생각하고 작년에 시험을 봤습니다."
송필근은 공채시험에서 남궁경호와 함께 지금의 '... ...' 코너 연기를 했다. 아이디어는 학교생활 중 얻은 것. "어느 날 경호가 선배 한명을 소개시켜줬는데, 소개 시켜주고 바로 화장실에 간 거예요. 아주 어색했죠. 거기에서 경호가 힌트를 얻어 공채 시험에서 연기했습니다."
2년간 '물'을 먹었지만 '개그신동'의 기운은 여전히 남았는지 그는 당당히 수석합격을 했다. 류근지(24기)-송영길(25기)-정승환(26기)을 잇게 됐다.
"제가 2남 중 장남인데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부모님께 100점 맞은 시험지를 갔다드린 적이 없어요. 그런데 27기 개그맨 중 1등을 한 거죠. 아버지께 '1등으로 들어갔어요, 아빠'라고 말씀드렸을 때가 제일 뿌듯했습니다. 부모님이 바로 SNS에 글 남기시고 지인들께 전체 무자, 전체 카톡 보내시고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너무 행복해하셨어요(웃음)."
'... ...'은 최근 '개그콘서트'가 시행 중인 맨토-멘티제의 산물로, 처음에는 남궁경호와 유민상만으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남궁경호는 공채시험에서 함께 했던 '... ...'를 혼자만 하는 게 미안했던지 송필근에게 '허락'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다 유민상이 "너희가 짠 건데 어떻게 나와 경호만 하냐"면서 송필근이 '사돈어른'으로 코너에 합류하게 됐다. 송필근의 능청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현재는 남궁경호보다 송필근의 비중이 더 커진 상황이다. "처음에는 경호가 미안해했는데 이제는 제가 미안해요."
지난 8월 25일 첫 선을 보인 '놈놈놈' 역시 멘토-멘티제에서 빛을 발한 코너. 선배가 후배를 선택하던 방식에서 변화, 후배가 선배를 택하는 방식을 도입해서 나온 첫 결과물이다. 송필근-안소미가 연인으로, 김기리, 유인석, 복현규가 잘 생긴 세 친구로 등장한다.
"원래는 김기리 선배 대신에 송병철 선배가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송 선배가 너무 많은 코너를 하고 있었어요. 감독님이 김기리 선배로 바꾸자고 제안, 지금의 멤버들이 구성됐죠. 아이디어 짜주고 정작 본인은 빠진 송병철 선배한테 고맙고 감사해요."
그의 일주일도 다른 '개그콘서트' 개그맨들처럼 회의-검사-회의-검사-녹화 순으로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주말에 쉬는 날이 있지만 대개는 아이디어 회의로 보낸다. 주7일 개그맨 인생인 것.
"작년에 합격하고 막내 생활 할 때는 할일도 많고, 힘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개그맨이 됐다는 생각에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꿈이었던 개그가 일이 됐더라고요. 즐거워서 짰던 개그를 일하는 느낌으로 짜게 되더라고요. 개그맨 지망생 때는 '재밌겠다, 재미겠다' 이러면서 짰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일주일 안에 뭔가를 짜내야 하니까 밤새 죽을 것처럼 하고 있어요. 그래도 무대에서 관객들을 웃길 때는 너무 행복합니다. 짜릿하죠. 제일 기분 좋아요."
그는 "지금이야 일이 힘드니 어쩌니 하지만 공채 발표 하루 전까지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라며 "발표를 앞두고 잠이 안 오니까 경호랑 술을 마셨어요. '붙여주면 여기(노원구 월계동)부터 KBS 방송국까지 혀로 핥으면서 간다'고 서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고 웃으며 말했다.
"코너 없으면 출근 못하는 '개콘' 경쟁시스템 큰 자극"
송필근은 롤모델로 박영진을 꼽았다. 박영진은 '개그콘서트'의 대표적 연구형 개그맨. 책상 앞에 앉아 고시생 공부하듯 개그를 짜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영진 선배는 공개 코미디, 콩트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에요. 사실 친하지는 않지만 많이 배우고 싶은 선배입니다. 또 유민상 선배도 제 롤모델이죠.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고요. 그분의 장점을 빨아 먹을 생각입니다. 쪽쪽(웃음). 연기력도 뛰어나지만 개그를 짤 때 한 번 더 꼬고, 꺾는 능력이 탁월해요. 그걸 정말 배우고 싶어요."
2년차에 이름도 어느 정도 알려지고 있지만 긴장을 한시도 늦출 수는 없다. '개그콘서트'는 2년차가 되면 코너에 출연하지 않으면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 있는 연습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수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 'KBS 개그맨'이란 타이틀이 붙은 '백수'에 불과해지는 것. 그와 같은 동기 중에도 이미 몇 명은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1년차 때 너무 힘들 때는 출근 안하고 한 2~3주 쉬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섬뜩하죠. 코너가 없으면 출근해도 참 머쓱해요. 코너마다 책상이 정해져 있어서 앉을 곳도 없거든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에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늘 무대 위에서 시청자분들에게 인사하는 롱런하는 개그맨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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