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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교배장·피부앨범"..'벌거벗은 세계사' 히틀러의 파렴치한 만행[★밤TV]

"인간교배장·피부앨범"..'벌거벗은 세계사' 히틀러의 파렴치한 만행[★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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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선 기자
/사진=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캡처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설민석이 아돌프 히틀러의 소름끼치는 만행을 폭로했다.


12일 첫 방송된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이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설민석 강사가 은지원, 존박, 이혜성, 게스트 다니엘, 알베르토에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정치가 아돌프 히틀러의 독재정치를 설명했다.


첫 번째 세계사 여행지는 독일이었다. 출연진은 잔혹한 역사를 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을 떠났다. 히틀러는 어떻게 600만명을 학살했을까. 히틀러는 왜 인류 최악의 악마가 됐을까. 히틀러는 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까.


히틀러는 1935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당대회 중 뉘른베르크법을 만들었다. 뉘른베르크법은 유대인의 삶을 바꾼 최악의 법이었다. 독일에선 유대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하고 유대인들을 모든 공직에서 추방했다. 또 독일인과 유대인의 사랑까지 방해함으로써 독일인과 유대인의 인종을 나눴다.


다니엘은 "나는 혼혈이라 내가 당시 태어났으면 끌려갔을 거다"라고 말했다. 1938년 11월 9일은 '수정의 밤'이었다. 이날 유대인 상점의 7500개 유리창을 모두 깨는가 하면, 수백 개의 유대교 회당 및 묘지에 방화를 저지르는 유대인 사회에 무차별적 폭력이 이뤄졌기 때문. 히틀러는 유대인을 고리대금업자로 표현하며 "유대인이 사라져야 지구가 깨끗해진다"라고 사람들의 학살 동조를 부추겼다. 또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폭력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수정의 밤'을 계기로 독일에선 본격적인 유대인 탄압이 시작됐다.


/사진=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캡처


히틀러는 '수정의 밤' 이후 유대인들을 게토에서 수용소로 보냈다. 히틀러는 "노동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수용소 속 유대인의 삶은 처참했다. 설민석은 이르마 그레제라는 여성의 교도관이 되기 전후 비교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19세에 교도관이 돼 하루 30명 이상을 살인하고 아름다운 여성만 따로 불러내 옷을 다 벗긴 후 몸에 상처를 냈다.


설민석은 히틀러의 인종 대학살 '홀로코스트'도 설명했다. 독일군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 유대인들을 샤워시킨다며 가스실에 가둬 그들을 죽였다. 독일군은 이조차 비효율적이라 생각해서 수용소로 이동하는 트럭을 '이동식 가스실'로 사용했다. 나치는 상상 초월의 소름끼치는 학살을 했다. 유대인 여성은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머리를 모두 밀어야 했고, 금니는 금으로 사용, 유대인 피부로는 전등갓을 만들거나 지방은 긁어 비누를 만들었다. 유대인의 시체 중 남은 재는 밭에 뿌렸다. 나치는 유대인의 피부로 앨범을 만들 정도였다.


히틀러는 대표적인 애견인이었다는 반전이 있었다. 세계 최초조 동물보호법을 제정한 것. 그는 자신의 반려견 블론디 셰퍼트를 아끼며 '순수 혈통'에 집착했다. 히틀러는 우월한 생명체만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우승열패' 이론을 주장하며 "인종 청소를 해야한다"고 나치당의 신념을 강조했다.


히틀러는 아리아인 출생률을 늘리기 위한 특별 대책으로 '인간 교배장'을 만들었다. 공장처럼 아이를 생산했던 것. 선전에 세뇌된 애국심 강한 여성 장교들이 그곳에 갔으며, 무작위의 남성을 만났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나치 친위대 가정에 입양되거나 히틀러의 선전도구로 사용됐다. 여성 장교들의 인간 교배장 지원율이 하락하자 독일군은 전쟁을 통해 북유럽 여성을 강제 납치했고, 하얀 피부, 파란 눈동자, 금발, 큰 키와 골격을 가진 여성들을 선별해 독일 장교들이 집단 강간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죽임을 당했다.


히틀러는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과거가 있었다. 다니엘은 "히틀러가 아버지에게 학대를 심하게 당하고, 엄마한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서 자아의 갈등이 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출생인 그의 꿈은 화가였지만 아버지가 히트러의 의견을 묵살하고 실업학교에 강제 입학시켰다. 청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심신 미약으로 군 면제를 받은 후 오스트리아 국적을 포기하고 독일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입대 지원을 하고 훈장을 받으며 맹활약했다.


/사진=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캡처


이후 한 정신나간 병사가 "철조망에 스스로 몸을 긁어 병원에 왔다"라고 말하자 히틀러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히틀러는 1933년 나치의 총통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1인자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건 한 맥주집에서 첫 데뷔 연설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자극적이고 강한 단어를 썼으며, 대중을 현혹하는 무대 장치를 사용하며 저녁에만 연설하는 방법을 썼다.


다니엘은 "무솔리니 인사법을 독일에서 절대 하면 안 된다. 장난으로라도 따라하면 징역 3년을 받고 공공장소에서 체포된다"라고 말했다. 알베르토는 "우리도 그 인사를 따라하면 징역 2년형을 받는다"라고 전했다. 히틀러의 오른팔로는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있었다. 그는 라디오를 보급해 국민을 세뇌시켰다. 다니엘은 "독일의 마이크 기술이 발달한 이유가 10만명을 동시에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중을 현혹시킬 줄 알았던 히틀러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이 있었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후 연합군에게 배상금을 내기 위해 화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이에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당시 빵 한 조각이 800억 마르크로 치솟았다. 히틀러는 자국을 일으키기 위해 폴란드에 자작극을 펼치며 영국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독일은 프랑스 철벽의 요새 '마지노선'을 뚫고 연합군을 덩케르크에 몰아넣으며 프랑스 북부를 차지했다. 독일은 소련까지 넘봤지만 실패,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습격한 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독일은 패전했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선택을 마음 먹고 전날 에바 브라운과 결혼했다. 이후 그는 반려견 블론디를 안락사 시키고 에바 브라운에게 청산가리를 먹인 후 스스로 권총을 쏜 후 목숨을 끊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만든 홀로코스트로 시신이 불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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