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LCC의 이처럼 민감한 용어선택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2005년 이전에 우리나라의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2개사만 있었다. 그래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사의 유일한 모델이자 전부였다. 그런데 LCC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명칭을 선택해야 했다.
FSC 기존항공사만 있을 때는 아무 문제없던 항공시장에 LCC가 들어오면서 많은 이가 불편해지고 곤란해진 것이다.
이처럼 없던 업종(業種)이나 업태(業態)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면 이를 어떻게 부를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뉴스나 정부기관 혹은 소비자들이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같은 신규사업을 펼치는 해당회사에서도 명칭을 내놔야 한다. 즉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LCC의 경우에는 취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명칭을 자신들이 정하기 전에 이미 해외 LCC로 인한 우리말 명칭이 존재한 이유가 컸다.
이 같은 항공시장 사례와 꼭 빼 닮은 사례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의 항공시장 사례보다 약 10년 전쯤인 1990년대 초중반에 유통업이 그랬다. 백화점이 전통적인 유일한 대형유통업체였는데 할인점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할인점 도입과 백화점과의 경쟁 그리고 발전과정 및 소비자 인식변화 등은 항공시장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장에서 할인점의 진입과정은 우리나라 항공시장에서 LCC의 진입과정과 유난히 닮은꼴이다.

우리나라 할인점 역시 미국 월마트(Wal-Mart)와 프랑스 까르푸(Carrefour)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것이었다. 특히 월마트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는데, 월마트는 미국에서 태동한 디스카운트 스토어(discount store)였다. 이 '디스카운트 스토어'라는 오늘날의 할인점이 우리나라에는 1993년 처음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할인점으로 기록된 이마트 창동점은 1993년 11월12일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 할인점이 처음 생겼을 당시 대형유통업체는 백화점이 유일했다. 할인점이 처음 생겼을 때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기존의 백화점을 버리고 쇼핑장소를 할인점으로 곧장 바꾼 것은 아니었다.
수십년에 걸친 쇼핑의 경험을 새로운 업체가 값이 싸다고 해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인점에 가서 백화점의 고품격 서비스를 요구하기 일쑤였다. 백화점과 비교해서 서비스의 질이 낮다는 점에 거부감이 심했다. 품격과 서비스 대신 물건값이 싸다는 점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가격은 가격이고, 대형유통업체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즉, 기존에 백화점에서 받아오던 최상의 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인점이라는 업태가 우리나라 시장에 처음 진출할 당시 소비자와 소통할 명칭이 필요했다. 월마트가 디스카운트 스토어(Discount Store)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저가점포'나 '저가백화점' 혹은 '저가슈퍼마켓'으로 부르지 않았다. 곧바로 '할인점'이나 '대형마트'라 해석하여 이름 붙였다. 지금이야 '할인점'이라는 명칭이 꽤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그리 품격 있는 명칭은 아니었다. '깎아주는 점포'라는 의미로 꽤 촌스러웠다.

항공업계의 사례와 대비해 본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른바 '백화점'이고 LCC는 '할인점'인 셈이다. 우리가 할인점을 '저가백화점'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LCC를 '저가항공사'로 부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항공업계에서는 LCC를 기존의 두 항공사와 비교해서 '할인항공사'라 부르지 않고 '저가의 항공사'라고 굳이 이름 붙인 꼴이다.
-양성진 항공산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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