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지원금 받아서 사업을 수행한 스타트업이 어느 날 갑자기 등기로 날아온 '환수' 통보서를 받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참여제한 3~5년, 지원금 전액 환수. 통보서 한 장에 회사의 미래가 통째로 흔들린다. 특히 스타트업은 정부지원금이 운영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수처분 하나가 자칫 사실상 폐업 수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환수처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법원에서 환수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효로 판단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누가 처분했느냐'부터 따져봐야
환수처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건 처분 권한의 주체다. 행정법의 기본 원리상 법령이 정한 권한 있는 기관만이 유효한 처분을 할 수 있다. 이걸 놓치면 처분 자체가 무너진다.
부산고등법원 판결에서 주관기관은 스타트업에 '협약취소, 지원금 약 1,970만 원 전액 환수, 참여제한 5년'을 통보했다. 그런데 법원은 해당 권한이 주관기관이 아니라 전담기관인 창업진흥원에 있다고 봤다. 통보서 어디에도 창업진흥원이 권한을 행사했다거나 주관기관이 대리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결국 무권한자의 처분으로 무효라는 판단이 나왔다.
대전지방법원 판결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장 명의로 참여제한 3년과 약 6억 9천만 원의 환수처분이 내려졌는데, 법원은 참여제한과 환수 권한은 법령상 장관의 권한이고, 고시라는 행정규칙만으로는 전담기관장에게 처분권한이 위임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하면 중복이나 표절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봐서, 결국 처분 전부가 취소됐다.
'협약 기반 조치'는 행정처분이 아닐 수도
창업진흥원이 시행하는 창업지원사업의 경우, 법원은 지원협약의 성격을 공법상 계약으로 본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에서 법원은 창업진흥원의 환수 및 참여제한 조치가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령에 환수나 참여제한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고, 원고가 환수금을 반환하지 않더라도 강제징수할 수 있는 법령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치의 효과는 전적으로 협약 내용에 의해서만 정해진다는 거다.
이 구별이 중요한 이유는 소송 형태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행정처분이면 취소소송, 공법상 계약이면 당사자소송이다. 소송 유형을 잘못 고르면 본안 판단도 못 받고 각하된다. 실제로 위 사건에서도 원고의 취소소송 청구는 각하됐고, 예비적으로 제기한 당사자소송에서만 본안 심리가 이루어졌다. 다른 서울행정법원 판결에서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됐다. 소송 전략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게 되는 셈이다.
환수금액 적정성도 다툴 수 있어
대법원 판결은 중요한 원칙을 판시했다. 환수처분이 재량행위인 경우, 재량권 일탈이나 남용이 인정되면 법원은 적정 금액만 남기고 초과분만 취소하는 게 아니라 처분 전부를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수금액이 과도하다는 점만 입증해도 처분 전체가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다.
용도가 특정된 금원의 전용은 위험
서울고등법원 사건에서는 인건비를 다른 용도로 일시 전용한 것만으로도 용도 외 사용이 인정됐다. 사후에 인건비를 정상 지급했더라도 그건 사후 사정에 불과하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었다. 용도가 특정된 금원은 그만큼 엄격하게 판단된다. 대전지방법원 사건에서도 허위증빙 제출이 인정돼 전액 환수와 참여제한 3년이 유지됐다. 결국 사안에 따라 결론이 갈리는 영역이다.
환수통보서를 받은 순간부터 시간은 흐른다. 처분 권한의 적법성, 협약의 법적 성격과 그에 따른 소송 유형, 환수금 산정의 타당성, 의견제출 기회 부여 등 절차적 하자 유무. 이 네 가지를 빠르게 검토해야 한다. 어느 하나에서 흠이 발견되면 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효로 판단될 여지가 생긴다. 다만 각 사안의 법령 근거, 협약 구조, 사실관계가 전부 다르다. 같은 창업진흥원 사업이라도 세부 지침이나 협약 조항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섣부른 판단보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한 영역이므로 전문가와 상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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