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장권 가격 아깝지 않을 스릴 넘치는 오락 영화

생성형 AI 시대의 문을 연 인류는 '집단지성'이 이끄는 새로운 진화의 단계를 마주하고 있다. 사소한 경험부터 거대한 지식까지, 실시간으로 네트워크에 축적하고 서로에게 공유하는 현재다. 어느덧 AI가 선사하는 거대한 알고리즘 아래 각자의 지성을 하나로 엮어가는 지금, 분명 인류는 최첨단 기술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중이다.
허나 연상호 감독은 이런 최첨단 문명 사회 위에 다시 한번 자신의 좀비들을 일으켜 세운다. 바로 21일 개봉한 영화 ‘군체’다. 영화 ‘부산행’ 시리즈를 통해 K-좀비의 공포를 각인시켰던 좀비 마스터다운 선택이다. 이번에도 전통적인 의미의 좀비와 결이 다르다. 단순히 굶주림에 달려드는 시체가 아니다. 감염자들은 각자의 신체 감각과 의식을 공유하며 서로 연결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가뜩이나 무서웠던 연 감독의 좀비들이 이젠 훨씬 더 똑똑해졌다.

‘군체’의 가장 큰 매력은 촘촘하게 설계된 설정이다. 좀비 군체의 발생 이유, 행동 기작 등 세부적인 요소들을 잘 구성했다. 이는 ‘부산행’과 다른 새로운 좀비월드를 빚는 토대가 된다. 과거의 영광을 등에 업은 자가복제가 아닌, 연상호의 좀비 월드 역시 새롭게 진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자신감의 근원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관의 설정을 촘촘히 채운 대신, 캐릭터들의 전사는 과감히 덜어냈다는 사실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장르 영화에서 과도한 캐릭터 설정은 독이 되기 쉽다. 실제로 ‘부산행’은 가족애와 희생에 길게 집중하며 신파라는 혹평도 받았다. 하지만 ‘군체’는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고, 불필요한 눈물은 지워냈다.

반면 유기적인 세계관 설정들로 캐릭터들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부산행’이 답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재난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면, ‘군체’는 분명한 목적과 해답을 향해 움직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가 비교적 명확하기에 관객 역시 이야기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다.
여기서 ‘군체’는 단순한 좀비 영화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다. 영화가 던지는 가장 피상적인 메시지는 집단지성과 인간 진화다. 연결된 의식, 공유되는 정보, 그리고 개별성을 잃어가는 존재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매일 거대한 군체와 접속하고 있다. 집단 지성의 공유, AI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 고유의 영역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 ‘군체’는 이 막연한 공포를 장르 영화의 문법 안으로 영리하게 끌어들인다.

연상호는 늘 재난을 통해 인간성을 무너뜨린다. ‘부산행’이 생존 앞에서 드러나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군체’는 각자의 신념으로 치고 받는다. 자신의 피조물을 새로운 진화체라 믿는 ‘서영철’(구교환), 불의를 지나치지 못하는 ‘권세정’(전지현), 누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보안요원 ‘최현석’(지창욱)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뒤섞인다. 물론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부산행’에서 존재했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을 평면적인 빌런과 결이 다르다.
그리고 이 세계를 완성하는 건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특히 전지현은 등장하는 순간마다 화면을 장악한다. 강단 있는 권세정이라는 캐릭터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이처럼 강인한 여성 액션 캐릭터를 현재 한국 영화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전지현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구교환 역시 인상적이다. 그가 연기한 서영철은 전형적인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거리가 있다. 광기를 겉으로 드러내거나 과장된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험하다. 낮은 톤으로 이어지는 그의 신념은 섬뜩할 정도로 단단하고, 그 침착함이 캐릭터의 광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반도’에서 보여줬던 과잉된 빌런 에너지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결국 연상호 감독은 또 하나의 잘 빠진 장르 영화를 완성해냈다. 여름을 위한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는 충분하고, 장르 팬들이 기대하는 긴장과 스케일 역시 놓치지 않는다. 직계 후속작이었던 ‘반도’보다 ‘군체’가 연상호 좀비 월드의 계보를 확실하게 잇고 있다. 최근 극장가는 흥행작 중심의 롱런을 겨냥할 수 있다. ‘부산행’이라는 강력한 유산과 함께하는 만큼 ‘군체’ 역시 그 가능성이 엿보인다. 좀비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좀비들이 정보 교류를 할 때 보이는 특이한 동작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흥미로운 의문은 남는다. ‘왜 아무도 SNS를 하지 않을까’라는 지점이다. 만약 누군가 ‘둥우리 빌딩’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했다면, 적어도 조금 더 안전한 탈출 루트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것 역시 ‘군체’가 던지는 또 다른 역설인지도 모른다. 모두의 지식이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결국 인간은 홀로 살아가며 늘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는 중이다.
영화 ‘군체’는 현재 극장가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122분.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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