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나바머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간 16차례의 폭탄 공격을 벌여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연쇄 폭탄 테러범의 이름이다. ‘유나바머(Unabomber)’는 FBI의 수사 코드명 ‘UNABOM’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대학(University)’의‘UN’과 항공사(Airline)의 ‘A’, 폭파(Bombing)의 ‘BOM’을 조합한 명칭이다. 유나바머 수사는 FBI 역사상 가장 장기간 이어지고 많은 비용이 투입된 수사로도 기록됐다.
지금까지 유나바머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수차례 만들어졌다. 20년 가까이 FBI를 따돌리고 미국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희대의 연쇄 폭탄 테러범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한 천재이자 수학 교수로 활동한 이력과 현대 산업사회와 기술 문명에 대한 급진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테러 동기, 오랜 추적 끝에 그를 붙잡은 과정(동생의 신고)까지 사건 자체가 극적인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범행 동기부터 수사 과정과 체포에 이르기까지 기록과 자료가 풍부하다는 점도 유나바머를 다룬 작품이 여러 편 만들어진 이유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두 편의 유나바머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맨헌트: 유나바머’(2017)는 FBI 수사와 프로파일링을 중심으로 범인의 언어적 특징을 분석해 추적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4부작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2018)는 테드 카진스키의 희귀 인터뷰와 자필 기록, 범행 과정과 하버드 시절 참여했던 비밀 실험 등을 실제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명했다.
넷플릭스 신작 ‘유나바머: 비밀 실험’은 테드 카진스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 영화다. 영화는 1960년대 하버드 시절의 심리 실험과 1990년대 FBI의 추적을 교차시키며 ‘테드 카진스키가 어떻게 유나바머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1958년 16세의 나이에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에 입학한 수학 영재 테드 카진스키(제이컵 트라블레이)는 이듬해 심리학 교수 헨리 머리(러셀 크로)의 연구에 실험 대상으로 참여하면서 겪는 심리적 혼란을 그렸다.

영화는 폭탄 테러를 이어가며 오랫동안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유나바머를 추적하는 1990년대 FBI의 수사를 함께 다룬다. FBI 요원 조앤 밀러(셰일린 우들리)는 기존의 수사 방식에서 벗어나 유나바머가 남긴 선언문과 글에 주목하고, 그의 문체와 사상을 분석하며 범인의 정체에 접근한다. 영화에서 조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여러 실제 수사 과정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FBI 요원이다.
영화 ‘유나바머 비밀 실험’은 테드가 참여했던 3년간의 실험에 주목한다. 수십 년 동안 심리학 연구에 매진한 학자이자 당대 미국 최고의 심리학자들을 배출한 교육자인 하버드 심리클리닉 소장 헨리 머리가 이끈 연구는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실험이었다. 카진스키는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매주 연구에 참여했다. 이 영화는 머리 박사를 악역으로, 카진스키를 희생양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는 머리 박사의 실험과 CIA 연관성을 다루기도 하는데 어린 나이에 경험한 강도 높은 심리 실험이 비윤리적이었는지, 카진스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들여다본다.
테드 카진스키의 이야기가 여러 차례 영상화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뤄졌던 카진스키의 하버드 시절을 파고든 것은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를 꾀한 지점으로 보인다. 각본은 TV 시리즈 ‘더 플래시’와 ‘슬리피 할로우’에서 작가로 활동한 샘 찰슨과 영화 ‘언프렌디드’의 각본을 쓴 넬슨 그리브스가 맡았다. 두 사람 모두 하버드 출신으로 2020년부터 유나바머 사건을 극영화로 준비했다.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카진스키의 하버드 시절과 머리와의 관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인물의 형성 과정을 들여다본 점이 눈에 띈다.

연출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심리 스릴러와 수사극의 형식을 오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수사극에서 기대할 만한 추적의 긴장감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셰일린 우들리가 연기한 FBI 요원 조앤 밀러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 예리한 감각을 지닌 여성 수사관의 추적극에 그치면서 실제 사건이 가진 복합적인 면모가 희석된 인상을 준다.
1996년 체포된 카진스키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23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유나바머라는 이름이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남긴 3만 5,000자의 성명서 ‘산업사회와 그 미래’도 한몫한다. 현대 산업사회와 기술 발전이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 그의 글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일상 깊숙이 자리한 오늘날,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악랄한 범죄자의 주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한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 한, 유나바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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