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최초 北서 찍은 北다큐제작... 차기작도 DMZ다룬 '크로싱더라인'

지난 2001년 서구 최초로 북한에 들어가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영국 다니엘 고든 감독이 최근 내한했다.
다니엘 고든 감독은 16일 오후 2시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개최된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천리마축구단’ 시사회 후 가진 기자회견 자리에서 “유년기 북한 축구단의 열혈팬으로 북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다큐 촬영중 북한 주민의 신뢰를 받아 북한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어떤 나라’(2004)는 북한 전승기념일(7월27일)에 개최되는 매스게임에 참가한 북한 여중생 박현순(13)양과 김송연(11)양의 연습과정과 그 가족들의 삶을 생생히 담은 작품. 이에 앞서 제작된 ‘천리마 축구단’(2002)은 1966년 런던월드컵 8강 신화를 일궈낸 북한 축구단의 경기장면과 후일담을 그렸다.
다음은 다니엘 고든 감독과의 일문일답.
-한국에 온 소감은?
▶이 자리가 마치 축구팀에 입단해서 기자회견하는 자리 같다. 나로서는 여러분의 소감이 더 궁금하다. 지난해 9월에는 ‘어떤 나라’가 평양에서, 한달 뒤인 10월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돼 반응이 좋았다. 오는 26일 서울에서도 개봉돼 아주 기쁘다.
-오늘 한국 축구선수 안정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이유는?
▶안정환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울었기 때문에 충분히 입을 가치가 있다.(웃음)
-이 다큐들을 준비하면서 남한의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참고했나?
▶남한에서 방송되는 북한 관련 프로그램은 볼 기회가 없었다. 또 개인적으로 일렬정대로 행진하는 북한의 이미지 정도 알고 있었다. 작품 ‘천리마 축구단’을 찍고 나서 북한의 실생활을 담고 싶었는데 북한 아이들, 가족간의 관계, 평범한 평양 시민의 모습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북한의 일상을 담은 작품은 아직까지 없었고 이 작품이 처음이라는 얘기를 북한 주민으로부터 많이 들었다.
-이 다큐들을 찍으면서 북한관은 어떻게 변화했나?
▶북한 첫 방문은 2001년 4월이었다. 당시에도 북한에 편견이 없는 상태였다. 어려서부터 북한 축구단의 이름을 줄줄 외울 정도로 열혈팬이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북한으로 이어진 것이지 북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아니었다.
방문 후 북한 사회에 대해서 이해의 폭이 더욱 넓어졌고 서구의 편향된 시선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 북한 사람들이 아주 신사적이고 나를 신뢰해줘 사랑하는 마음과 호감이 생겼다.
이번이 남한 두 번째 방문이다. 옷은 다르지만 남한 사람들도 정말 북한 주민들과 똑같이 생긴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이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솔직히 북한 주민의 신뢰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백인은 한국전 폭격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아마 ‘천리마 축구단’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호의를 이끌어낸 가장 큰 요소라고 본다.
일례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어떤 나라’ 군무 장면을 찍는 중 북한 관리가 우리에게 항의했는데 '천리마 축구단‘의 제작팀이라는 얘기를 듣더니 태도가 돌변했다. 오히려 더 좋은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자리로 안내하고 국영방송 카메라더러 비키라고 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의미 있는 노력이었다고 본다.

-두 편의 다큐를 찍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천리마 축구단’의 선수단이 김일성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신이다. 내가 한국말을 잘 몰라서 그 당시에는 상황을 이해 못했는데 나중에 편집중 선수들을 배려하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여중생이 기차로 북한 백두산을 가는 장면을 찍는데 이동시간이 40시간 가까이 걸렸다. 게다가 스태프가 3명밖에 없어서 장비를 산으로 이동하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참 어려웠다.
-‘천리마 축구단’ 촬영허가가 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았나?
▶4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영국인 북한 여행전문가와 의논을 하고 스토리 보드 등을 짜는데 3년이 지났다. 또 북측의 촬영 허가가 난 후 펀딩을 하고 촬영준비를 하는데 1년이 더 소요됐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북측에서 북한 축구팀에 대한 자세한 인적 사항이 기록된 팩스가 띄엄띄엄 들어오던 때였다.
-차기작도 북한 관련 다큐라고 들었다
▶네 명의 미군병사들이 DMZ에서 근무하다가 월북한 내용을 담은 다큐 ‘크로싱 더 라인’을 현재 편집중이다.
-‘어떤 나라’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도 개봉됐다
▶‘어떤 나라’는 로버트 드 니로가 주최하는 미국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바 있다. 현재 뉴욕 필름포럼에서 상영중인데 ‘뉴욕 타임스’ 등의 유명매체에서 호평을 받았고 미국 사회에 비교적 새롭게 비춰지는 것 같다.
-북한 인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은 없나?
▶평양시내의 김일성 동상 등의 기념물은 평양시민 삶의 일부라고 봤다. 거리낌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보기에 북한 식량난은 심각한 것 같다. 이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국제기구를 통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 다큐를 통해 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외부에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는 편이라 인권영화는 안 만들 것 같다. 그런데 전부터 북한 관련 다큐는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고 장담하고 계속 만들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안 하겠다는 말은 되도록 안해야겠다. (웃음)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어떤 나라’를 찍고 있었다
▶북한에 입국했을 때와 촬영중 정전이 됐을 때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에게서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궁지에 몰린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는 속내를 듣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을 악의 축이라고 칭한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도 다 알고 있고 이런 분위기가 더 긴장된 상황을 연출하는 것 같다.
-10월에 북한을 다시 방문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
▶‘크로싱 더 라인’에 대한 보충 자료조사와 부모님 효도관광차 방문할 계획이다.
<사진=윤권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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