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상과학영화로 불리는 SF영화는 곧 과학적 허구(Science Fiction)를 그린 영화를 뜻한다. 이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과학 다큐멘터리와 다르고, 과학적 논리를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점에서 판타지와 다르다.
남다른 '과학적 상상력'을 그럴싸하게 스크린에 옮겨낸 것은 할리우드의 오랜 전통이었다. 굳이 흑백 무성영화 시절까지 되돌아볼 필요도 없다. 지난해만 해도 외계 생명체의 침략을 그린 '우주전쟁'과 복제인간들의 생존기를 그린 '아일랜드'은 할리우드산 SF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를 강타했다.
어린 꿈나무들을 흥분시켰던 'E.T'와 '백 투더 퓨쳐', 숨막히는 프랜차이즈 '스타워즈'와 '매트릭스', 사이보그 시대의 도래를 그린 '블레이드 러너'와 터미네이터'는 물론 '슈퍼맨'·'액스맨'·'스파이더맨' 등등의 만화원작 슈퍼히어로 시리즈까지 열거하기도 힘든 SF의 명작들이 존재한다.
든든한 팬을 기반으로 한 SF문학·만화의 발달이 물론 큰 이유겠으나 무엇보다도 천문학적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거대 자본의 힘이 그 토대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SF는 곧 물량공세이며 '메이드 인 할리우드'라는 고정관념 속에 한국 SF영화의 명맥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지 오래다. 이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2002년과 2003년에 있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지향했던 우리 SF영화들은 대개 흥행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50억원 가까운 순제작비가 든 정윤수 감독의 '예스터데이'와 80억원을 들인 민병천 감독의 '내추럴시티'가 흥행에서 참패했다.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는 재앙과도 같았다. 90억원 이상의 순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개봉 첫주 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5억원을 건졌다. 실험성이나 그럴듯한 화면에 집중한 나머지 허술해진 내러티브를 관객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의 악몽을 딛고 한국 SF영화는 과연 부활할 것인가. 2006년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내놓는 제작비 100억의 기대작 '괴물'과 심형래 감독의 야심작 '디 워(D-War)', 그리고 김지운 임필성 한재림 감독이 뭉친 SF 옴니버스물 '인류멸망보고서'(가제)가 바로 한국 SF의 부활을 책임질 주역들이다.

오는 7월 27일로 개봉일을 확정지은 '괴물'은 가장 뜨거운 감자다. 이번 제 59회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열띤 반응을 얻은 '괴물'은 탄탄한 내러티브에 사실감있는 특수효과가 결합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00억원의 제작비 중 절반 가까이를 투입했으며 뉴질랜드 웨타워크숍과 미국 올퍼너지가 담당한 괴물의 특수효과는 "한국 SF영화를 서너단계 이상 한꺼번에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는 후문.
'괴물'에 더욱 큰 기대가 쏠리는 데는 꼼꼼한 이야기꾼 봉준호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SF물의 최대 단점으로 꼽혀 온 허술한 이야기 구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영화를 먼저 본 관계자는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하는 일가족의 눈물겨운 분투기 속에 유머과 슬픔, 공포와 감동이 모두 담겨있다는 말로 기대를 당부했다.
개그맨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부터 SF물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심형래 감독은 한국 SF영화의 입지전적인 인물. 1999년 '용가리'로 환호와 질타를 동시에 받았던 그가 새롭게 내놓은 작품이 바로 '디 워'다. 이무기의 전설을 바탕으로 '디 워'는 제작비 1000억원 이상, 제작기간만 6년이 넘는 초대형 작품. 쇼박스의 배급으로 올 연말이나 내년께 개봉 예정으로 현재 막바지 후반 작업이 진행중이다.
할리우드의 손을 거처 후반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순수 국내기술로 모든 특수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최근 공개된 티저 동영상은 그 속도감과 사실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로서 이른바 괴수영화로 분류되는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새로운 영역의 SF영화를 개척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 바로 '인류멸망보고서'다. 미래 지구의 멸망 시점을 전후로 하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라는 전제 아래, 절에서 일하는 로봇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천상의 피조물'(감독 김지운), 좀비가 된 순수한 어떤 청년의 이야기 '멋진 신세계'(감독 임필성), 오헨리의 소설을 변주한 지구멸망을 목도한 연인들의 뮤지컬 '크리스마스의 선물'(감독 한재림) 등 세 파트로 구성된다.
제작비는 각 15억으로 총 50억원이 들어갈 예정. 2003년 SF의 틀 안에 호러와 유머, 신파와 사회고발의 정신까지 담아냈던 장준환 감독의 수작 '지구를 지켜라'처럼 할리우드적 색채를 완전히 지워낸 새로운 SF영화의 탄생이 기대된다.
<사진설명=영화 '괴물'(왼쪽)과 '디워'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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