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오정해. '서편제' 이후 1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서편제'의 오정해라 불린다. 임권택 감독의 놀라운 100만 관객 영화 '서편제'의 눈먼 소리꾼 송화는 그 자체로 오정해요, 오정해 자체가 송화였다.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 10년 뒤의 이야기 '천년학'을 만든다 했을 때, 여주인공 송화 역에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쌍거풀이 없는 눈, 뽀얗고 동그란 얼굴, 자그마한 체구와 좁은 어깨…. 그 누구보다 쪽진 머리와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오정해는 새 영화 '천년학'의 개봉을 앞두고 짧은 미니스커트에 경쾌한 재킷을 걸쳤다.
옷차림을 바꿔도 따라붙는 ''서편제'의 오정해'란 말이 자신에게는 축복이라는 그. 지금 그에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천년학' 역시 그런 사랑을 받아 '천년학'의 오정해라는 수식어가 추가되는 것이다.
-캐주얼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못 알아보겠다.
▶이 모습이 평소 모습이다. 한복 입은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평상시 모습을 보면 다 못 알아보신다. '오정해 닮았네요' 이정도? 실제로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통바지, 박스형 웃옷에 쫄바지도 좋다. 편하게 입는 게 최고다. 어차피 오정해가 오정해지, 별 거 있나. 물론 한복을 입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워낙 급한 성격인데 차분해지고 엄마같은 느낌도 나고.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영화에서는 통 보기가 힘들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TV에 나오지 않아 놀고 있는 줄로 아는 분들이 많으셨겠지만 스케줄이 빡빡했다. 저 만큼 다양하게 해본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악극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라디오 DJ에 TV 진행자까지. 어린이 프로그램도 해봤다. 게다가 집안일도 해야지, 1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살면서 '천년학'까지 왔다. 오히려 하나만 하니까 영화를 할 때 더 한가했다.
-'천년학'에 참여하는 의미가 정말 남다르겠다.
▶의미가 너무 많은 영화다. '서편제' 때가 대학교 4학년였으니까 같은 인물을 10년 넘어 다시 한다는 것도 큰 의미다. 임권택 감독과만 4번째 만난 데다 이번이 100번째 작품이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처음엔 촬영장에서 웃지도 못하겠더라.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남들에겐 운이 좋아서 다시 불려나온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여질까 싶기도 하고. 배우가 아닌 삶을 살다 돌아왔다는 게 부담도 됐다. 하지만 역시 현장으로 돌어가면 편안해진다. 내가 예쁘고 잘난 배우도 아니고, 소리가 있고 충실히 역할을 해낼 수 있으니까 하는 건데 쓸 데 없는 생각을 했다 싶었다. 하루하루가 주옥 같았다.
-감량하다가 병원 신세까지 졌다고 하던데. '서편제' 때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워낙 아줌마로 편안하게 살지 않았나. 살이 찐 것도 있지만 긴장이 풀려서 늘어진 느낌이 있었다. 다이어트가 맘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는데 영화 덕분에 살을 뺐다. 최고 많이 나갈 때가 53kg인데 지금은 42kg이다.

-놀랍다. 40대 초반의 몸무게라니!
▶키가 작지 않나. '서편제' 때 몸무게가 43kg이었다. 그 땐 젓살도 있긴 했지만 참 관리란 걸 몰랐다. 엊그제 '서편제'를 본 남편이 대체 영화를 볼 수가 없다고 하더라. 촌스러워서.(웃음) 감독님께서 촌스러워도 좋다 좋다 하시니까 촬영 전날에도 수제비 한 대접 먹고 자버리고 그랬다.
-'서편제'의 오정해란 수식어가 지겨울 때는 없었나. 누군가는 오정해를 배우라고 하고 누군가는 국악인이라고 하고, 방송인이라는 사람도 많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날 보면 '오정해다'가 아니라 '서편제다' 그런다.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건 배우에게 축복이자 영광이다. 하나라도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그렇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만족하고 산다. 지금의 환경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여러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참 좋다. 소리를 할 때는 소리하는 연기자가 아니라 소리꾼이고 싶다. 고정된 타이틀을 갖는 건 제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할 때는 국악인이라고 하면 국악인의 힘을 빌어 출연한 것 같아서 싫다. 감독님도 내가 그 역할에 맞는 사람이니까 쓰셨겠지. 그 순간엔 연기자 오정해이고 싶다. 물론 소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제 옷이다. 벗을 수도 없고, 벗고 싶지도 않다.
-그럼 주부이자 어머니 오정해는?
▶4월이면 결혼 10년이 된다. 기본적인 생각으로는 항상 집이 먼저고 아이가 먼저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내 할 일을 하니까 시댁 식구나 아이 아버지도 하라고 하는 거겠지. 원래 내 꿈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는 거였다. 그게 최고의 행복이니까. 그런 생각이라면 주부로서 점수는 좀 많이 줘도 되겠지.(웃음)
-'천년학' 이후 계획은?
▶계획은 모른다. 오늘이 있으면 내일도 있는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천년학'이 잘 되는 것. 세계적 감독이 안쓰러운 대접을 받고 시작한 영화라, 잘 돼서 100번째의 짐도 덜고 다음 작품도 편안하게 할 수 있으시길 바랄 뿐이다. 솔직히는 칸 영화제도 갔으면 좋겠다. 우리 이야기, 우리 소리, 한복이 담긴 영화가 그런 자리에 가는 건 정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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