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 "베드신, 정직하게 만드는 게 최선"

'색, 계'로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또 다시 거머쥔 이안 감독이 '색, 계' 국내 개봉을 앞두고 내한했다.

'게이 카이보이'(브로크백 마운틴)나 '스와핑'(아이스 스톰) 등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서슴없이 건드렸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안 감독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사람 좋은 얼굴이었다. 그는 실제 같은 농도의 베드신이 담긴 '색, 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이안 감독은 배우들과 감정을 교류하며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인간미 넘치지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더 내밀해지고 있다. 스스로의 변화를 "고통스럽지만 정직하려고 한다"고 말한 이안 감독과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에서는 '와호장룡'이 서구적인 시각에 매몰됐다는 비판도 있었고, '색,계' 또한 10여분이 삭제돼 개봉된다. 타이완 출신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데 대한 중국 내 반감이 느껴지는데.

▶'와호장룡'은 중국인의 시각에서 본 영화이다. 아무리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국의 영화이다. '와호장룡'은 타이완에서는 흥행했으나 홍콩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무술영화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있는데 그 영화에는 철학과 현대의 조화, 이런 것들이 포함돼 그렇게 본 것 같다.

'색,계'는 중요한 장면이 잘렸지만 이런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된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감독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인들이 볼 수 있도록 중국에서 무삭제 개봉도 추진하고 있다.

-양조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의 어떤 면에서 악한 이미지를 끄집어내겠다는 생각을 했나.

▶훌륭한 배우는 어디에서도 훌륭하다. 그 사람의 섬세한 분위기와 얼굴의 느낌에서 그런 모습을 봤다. 양조위는 이번에 처음으로 만다린어를 공부해 영화를 찍었고, 중년남성과 악역에 도전했다. 양조위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반역자를 가장 잘 표현해낸 배우이다.

▶3년 동안 죽이려 했던 남자를 왜 죽이지 않았을까. 바로 그건 그 사람의 눈빛 때문이다. 양조위에게 어떤 여자라도 거역할 수 없는 눈빛을 보여달라고 했다.

-중국에서 항전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선전적인 시선이 아닌 남녀의 사랑으로만 표현했다. 중국 내 반발도 있었을 법한데.

▶사실 그런 것을 예상했으나 중국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호평을 하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걱정을 했다. 하지만 게이 카우보이 내용이라고 일부 데모가 있었지 대부분 호평을 했다.

사실 중국에서 애국심이 아니라 여자의 성 정체성에 관한 영화가 인정받은 데 대해 용기를 얻었다. 물론 중국에서 현재 소규모로 개봉됐으며 점차 와이드 릴리즈되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다른 피드백이 올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점차 혹독한 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데.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 같다. 내 인생의 여정과 영화의 여정은 같다. '센스 앤 센서빌러티' 이후부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껍집을 벗을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이런 영화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나 스스로가 보수적이고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물에 음양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듯이 내 작품 속에서도 그렇게 녹아들어간다. 아직까지 나를 다 벗기지 못했다. 어떨 때는 누군가 내게 그만하라는 신호를 줬으면 할 때도 있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직함을 추구하는 게 신념이기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을 끝까지 할 것이다. 지금은 나 스스로 미치지 않도록 지키기도 힘들다.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 모두 첫 정사 장면이 겁탈하듯이 거칠게 시작되는데.

▶'브로크백 마운틴'은 사회에서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다. 그런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로맨틱해지고 절실해지는 것 같다. 억압, 모멸을 느끼는 사람을 통해 절실해지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색, 계'의 경우 왕치아즈(탕웨이)는 몸이 정신을 배반한 경우이다.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는 자매 같은 영화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순수하고 깨끗한 천국 같은 사랑이라면, '색, 계'는 어둡고 추한 지옥 같은 사랑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색(色)은 무엇이며, 계(戒)는 무엇인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색'이며, 그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하는 게 '계'이다. '색, 계'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왕치아즈도 이씨(양조위)처럼 두려워하는 모습도, 또한 순수한 열정도 모두 나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제3의 눈으로 나를 감시하는 모습이 '계'라고 생각한다.

-격정적인 베드신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연출했다는데.

▶나는 보통 사람이기에 베드신에 대한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기 때문에 굉장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정직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체위와 앵글을 조정했다. 양조위와 탕웨이가 꼬여 있는 체위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해 연출했다.

(얼굴이 붉어지면서)섹스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절정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여자들은 모호하다. 아마 그런 것을 알려면 200년이나 지나서야 될 것이다. 그런 신을 만들 때 누구는 달래야 하고 누구에게는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직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