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시간 창고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다 뒤늦게 햇빛을 보는 이른바 '창고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지난 15일 유승호 주연의 '서울이 보이냐'가 2년만에 개봉된 데 이어 22일 그룹 쥬얼리의 박정아가 주인공을 맡은 '날나리 종부전'이 역시 2년만에 관객과 만난다. 29일 개봉하는 신구 주연의 '방울 토마토'는 지난1월 촬영을 끝낸 뒤 시일피일 개봉을 미루다 마침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됐다.
지난해부터 개봉이 늦춰진 곽재용 감독의 '무림여대생'과 2년 전 촬영이 끝난 이무영 감독의 '아버지와 마리와 나'도 6월 관객과 만난다.
창고영화는 더러는 한국영화 거품과 침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담긴 작품들이기에 뒤늦은 개봉은 축복받을 만하다.
신구는 '방울 토마토'의 뒤늦은 개봉에 대해 "이미 그런 전철이 있어서 영영 사장될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반갑고 기쁘다"고 말했다. 박정아 역시 "뒤늦게 매를 맞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개봉을 못하고 있는 영화들이 많은데 이렇게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했다.
하지만 배우와 감독, 그리고 제작자, 스태프의 감흥과는 달리 이 영화들에 관객들이 손을 들어줄지는 알 수 없다. 대개 창고영화들은 갑작스럽게 개봉이 결정되다보니 마케팅이 부족해 관객들이 영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창고영화들이 기획부터 제작까지 이미 수년전 감성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관객에 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이 보이냐'의 유승호가 "나 스스로도 2년 전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할 정도니 관객의 눈에는 더욱 낯설 수 있다.
앞서 개봉한 창고영화들이 하나같이 흥행과 비평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개봉을 앞둔 영화들에는 부담이 된다.
지난해 개봉한 '어깨너머의 연인'과 올 초 개봉한 '바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췄음에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다는 게 영화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들이 개봉을 확정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공들여 만든 영화를 개봉하는 게 우선일 뿐 아니라 영화가 개봉이 되어야 어쨌든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중 특정인이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을 경우 그 인기에 힘입어 개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궁' 이후 윤은혜의 인기가 치솟자 '카리스마 탈출기'가 부랴부랴 개봉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시장 상황과는 별개로 작가 주의 영화로 분류돼 빛을 못보는 영화도 있다.
창고영화들이 늘어나는데는 '와이드 릴리즈'로 단기간에 수입을 올리는 현행 개봉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기간에 수입을 올릴 수 없는 영화는 개봉이 점차 늦춰지다 이래저래 배급사와 갈등이 빚어지면서 창고로 가게 된다.
맛있는 와인은 때가 있는 것처럼 좋은 영화도 때가 있는 법이다. 창고영화들이 관객과 통하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창고로 가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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