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웅은 콤플렉스가 많은 배우였다. 누구보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누구보다 연기를 잘하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배우였지, 그 자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자신에 힘들어했고, 초조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태웅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신에게 콤플렉스란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흐르면 다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히 떨리고 부족하다. 결국 내가 끌어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버텨가면서 꿈을 잊지 않았던 것에서 내 매력이란 게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엄태웅이 이제야 비로소 주연 타이틀로 영화에 도전할 마음을 먹은 것도 그런 깨달음의 공이 크다.
엄태웅은 19일 개봉하는 '핸드폰'(감독 김한민)에 박용우와 주연을 맡았다. 떼로 몰려다녔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그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는 '핸드폰'에 여배우의 '몰카' 영상이 담긴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매니저 역을 맡았다. 왜 이제야 주연으로 출사표를 던졌을까? 엄태웅을 만났다.
-그동안 주연 제의도 많았을텐데 '핸드폰'으로 이제야 주연에 도전하는데.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영화를 함께 했다. 짐을 덜 수도 있었고. 이제는 한번쯤 주인공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 시점이 모험이 될 수도 있지만.
-왜 '핸드폰'이었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 어떤 사람이 가장 타격을 입고 극적인 갈등을 겪을까. 아마도 매니저가 아닐까 싶다. 또 내 나이 때 사람이 행복을 위해 성공하려 발버둥 치는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매니저라는 직업이 익숙할텐데.
▶내 캐스팅을 위해 자신을 굽히는 것도 직접 봤다. 항상 곁에서 보고 의지하고 상의하기도 하고. 소속사 대표를 많이 참고해서. 표정이나 동작, 말투를.
-첫 주연작인데 부담스럽지는 않나.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꾸는 것처럼 요즘 꿈에 시달린다.(웃음) 멀쩡히 촬영한 장면을 다시 찍는 꿈을 꾸거나, 시사회 때 사람들이 비웃는 꿈을 꾼다. 드라마 '부활'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연기 시작도, 스타덤도, 주연도 또래에 비해 늦은 편인데.
▶드라마 '쾌걸춘향'할 때 느낀 게 있다. 모든 게 때고 있고, 운이 있다는 것을. 혼자 잘해서는 안되고 흐름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이번 작품은 이 시점에 이름을 걸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힘든 작품일 것 같고, 감독님도 깐깐할 것 같았지만.
-엄태웅은 늘 연기를 잘한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탁월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고. 이번 작품을 통해 '비욘드 엄태웅'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라도 있었나.
▶계산을 잘 못한다. 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고. 나 혼자 계산하고 그러는 것보다 감독님과 많이 상의하려 한다. 이번에는 정말 감독님에게 많은 것을 믿고 의지했다. 보여줘야 한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더 좋은 배우였겠지.
-배우의 동영상이 담긴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매니저 역인데. 혹여 그런 동영상을 실제 본 적은 있나.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포르노와는 다른 씁쓸함이 밀려오더라.

-'핸드폰'처럼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때문에 힘들어한 적이 있나.
▶물론 있다. 여자친구에게도 감추고 싶은 열등의식도 있고. 내 마음은 이런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여자친구에 미안한 것도 있고.
-열등의식이라면.
▶자신감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뭔가 당당하지 못하고. 집안 환경 때문이랄까. 아직도 어른을 대하는 게 무섭다. 한 때는 나이를 먹으면 극복할 줄 알았다. 이제는 끌어안고 가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한계일 수도 있고 내 스타일일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뭔가 끝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내 나이 때 설경구 선배를 생각하면 극으로 갈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다. 내가 언제 끝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상대역 박용우와는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 박용우는 철저히 계산하고 연기하는 스타일인데.
▶대본에 깨알처럼 써놨더라. 내게 모자란 부분이 저런 것인가 생각해서 따라해봤는데 역시 잘 안되더라. 난 현장에서 충실한 타입이다.
-둘 다 공개연애를 하는 터라 그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던데.
▶연애 스타일도 다르다.(웃음) 나는 연애도 똑같은데 박용우 선배는 상당히 이성적이다. 그래서 잘 다투지도 않고.
-2년이 넘게 연애를 하고 있는데 결혼은 언제쯤.
▶요즘 어머니도 나이가 있으니 하라는 말씀을 부쩍 하신다. 나도 지난해까지는 내가 뭘 해놨다고 결혼인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결혼 생각이 많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언제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우생순' '님은 먼곳에'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앞에 나서지는 않았다. 자신의 판이 아니면 나서길 꺼려하는 것 같은데.
▶그런 면이 있다. 나보다 더 고생하고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나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시상식 같은데 가는 것도 떨리고 어벙벙하다.
-끼가 부족하다는 소리기도 한데.
▶콤플렉스 중 하나다. 초반에는 사람들에게 그것 때문에 싫은 소리도 들었다. 예전에 설 특집 프로그램으로 누나와 함께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에 혼란이 있던 때였다. 누구는 혼자 서야한다고 하고, 누구는 누나 덕을 봐야 한다고 하고. 아무튼 같이 노래를 불렀는데 영 못하겠더라. 끝나고 누나가 넌 왜 열심히 안하니라고 하더라. 열심히 안한 것은 아닌데 못하겠는 걸 어쩌겠나.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것에 혼란했던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나.
▶내가 이겨낸 게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주더라.
-운과 시간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텐데.
▶그런 말을 들으면 부끄럽다. 연기에만 깊이 빠져있었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저 꿈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을 뿐. 그런 점이 내 매력이 된게 아닌가도 싶다. 다만 이제는 그런 부분을 다 쓴 것 같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핸드폰'에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살갑게 대하기보단 성공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사는 인물을 맡았는데.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놓치는 경우도 있는 법인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연예인이라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주는 것에 어색했는데 어느 순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옆에서 여자친구가 많이 깨우쳐 준다.
-지난해는 '우생순' '차우' '핸드폰'으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
▶일복이 많았던 것 같다. 시간이 잘 맞아떨어졌다. 올해는 '선덕여왕'으로 첫 사극을 하는데 많이 고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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