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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투' vs '추노', 짐승남 3인의 몹시 우울한 맞짱

'혈투' vs '추노', 짐승남 3인의 몹시 우울한 맞짱

발행 :

김관명 기자
사진

때는 조선 광해군-인조 시대였고, 맞붙은 건 애꿎은 짐승남들이었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혈투'(감독 박훈정)와 지난해 겨울 방송됐던 KBS 드라마 '추노'(연출 곽정환) 얘기다. 그리고 그 짐승남들은 맞붙은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잘못 만난 시대를 거칠게 욕해야 했다.


우선 '혈투'는 광해군의 어심에 따라 소북과 대북이 정권을 교차 편집했던 시대의 암울한 싸움기다. 만주에서 청군에 맞선 조선의 무관 헌명(박희순)과 도영(진구), 그리고 어쩌다가 이들에 휘말린 무지랭이 병사 두수(고창석). 대의명분을 위해 헌명과 도영이 사력을 다해 적들과 싸우고, 살기위해 두수가 청군 복장을 하고 도망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대북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절친 도영과 그의 부친을 밀고해야 했던 헌명과,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를 찾으려는 도영은 애초 같이 있어서는 안될 사이였다. 그것도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는. 두수 또한 이역만리 전장에서 양반 비위나 맞추며 살아남기엔 사연이 너무 처절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들은 저마다의 송곳니로 1대1대1 싸움을 펼친 불쌍한 수컷들일 뿐이었다.


장혁 오지호 성동일의 연기가 볼 만했던 '추노' 역시 엇비슷한 혈투로 읽혀진다. 집안이 당쟁에 휘말려 양반에서 추노꾼으로 전락한 대길(장혁)과 훈련원 교관에서 노비가 된 송태하(오지호), 그리고 원래 그 바닥의 성마른 추노꾼 천지호(성동일). 장혁과 오지호도 처음엔 한 여성(이다해)을 오롯이 사랑할 줄 아는 남자들인 줄 알았고, 성동일도 자신이 키운 새끼(장혁)를 끝까지 마음속에 담아둔 남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추악한 인조시대 서인 정권의 권모와 술수가 드러나고, 제주도에서 어린 석견(소현세자의 3남)의 지난한 인생이 펼쳐지면서, 이들은 그저 눈 가린 채 서로 칼질을 해대야 하는 불쌍한 백성 3인방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할퀴고 베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그들. 자신들 뒤에서 갑갑하고 추악한 시대의 수레바퀴가 밀고 들어오는 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수컷들.


해서 헌명과 도영이 중국-조선 변방의 객잔에서 펼친 칼싸움의 쇳소리는 듣기에 묵직했으되 통쾌하진 않았고, 대길과 태하가 갈대밭을 배경으로 한 칼싸움은 보기에 멋있었으되 안쓰러웠다. 차라리 '혈투'에선 도포자락 휘날리며 '정치'를 말한 대감(김갑수)이 무지막지한 청군과 싸웠어야 했고, '추노'에선 3단 정치감각을 가증스럽게 발휘한 좌의정(김응수)이 노비를 쫓았어야 했다.


'혈투'의 대감과 '추노'의 좌의정이 말은 옳게 했다. "등 돌렸다 다시 손잡고, 이게 정치야." 대신 그 소리는 전장과 난장판에서 직접 피똥 싸보면서, 다름 아닌 양반네 그들이 들었어야 할 말이었다. 달리 만났으면 좋은 벗이 될 수 있었던 짐승남들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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