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위원장, 배우 조재현 인터뷰

1년 전 배우 조재현(48)에게는 5개의 직함이 있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이사장, 성신여대 교수, 연극열전 프로그래머. 그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법 한데, 올해는 여기에 드라마 두 개를 더 얹었다.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스캔들'과 내년 초 방송을 앞둔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가제). 그 사이 촬영한 화제의 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는 17일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봉을 앞두고 두 드라마 촬영과 대본연습을 오가는 쉴 틈 없는 일정 사이 딱 한 시간을 비워 조재현을 만났다. 머리가 조금 더 희끗해진 것 말고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그마저도 드라마 덕분에 한 부분 염색이다. 조재현은 "매년 일이 하나가 더해진다. 이제는 하나씩 정리를 하려고 한다"고 눙쳤지만 이내 "영화 시나리오도 쓴다"며 더 일을 벌일 궁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엄숙한 위원장님과 문제적 영화의 주인공과 친숙한 달변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이 희귀한 배우의 예측불가 행보가 점점 궁금해진다.
-머리가 부쩍 희끗희끗해졌다.
▶'스캔들' 때문에 부분염색을 한 거다. 요새 젊은 애들한테 반백이 반응이 좋다. 요새 잘생겼다는 얘기를 좀 듣는다. 예전에는 잘생겼다고 안 해줘서 화가 좀 났다. 반백 머리 하고 보니 이거다 싶다. 이걸로 한 15년 가려고. 보톡스 안 맞고 주름을 더해 가면서, 지적이고 섹시한 쪽으로 가 보려고 한다.(웃음)
-공직자 배우신데 제한상영가의 남자가 되셨다. 영등위는 위원장님이라고 안 봐주는 모양이다.
▶'무게'(감독 전규환)와 '뫼비우스'(감독 김기덕)가 둘 다 제한상영가를 받았다가 풀렸다. '콘돌은 날아간다'(감독 전수일)는 청소년관람불가였다. 내 영화는 최하 18금이다.(웃음) 그래도 좋지 않나. 이런 공적인 일을 하지만 연기는 연기대로 굉장히 자유롭다는 얘기 아닌가.
'무게' 땐 영등위에 소명하러 직접 간 적도 있다. 극적이었다. 제한상영가 풀어달라고 했었는데 영등위에서 두 번이나 소위 '빠꾸'를 맞았다. 전규환 감독은 '외국 가서 우리나라 후진 나라 아니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었는데, 이런 결과가 앞으로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 것 같다'고 하더라. 난 좀 딴소리를 했다. 정확한 포인트는 아니지만 '제한상영가도 영화제에서는 볼 수 있다. 이런 영화를 영화제에서 상영하면 다 매진인데 개봉하면 대부분 5000명 정도 본다. 영화제에선 잘 모르는 사람도 오지만 개봉관에는 정말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 온다'고. 그게 현실인데 그마저도 못 틀게 하면 어쩌냐고.
-배우로선 강렬한 캐릭터에 더욱 매력을 느끼나보다. 강렬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도 같고.
그만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격한 감정 경우엔 대본만 보면 '그게 나올까' 싶을 때도 있는데 촬영을 할 땐 감정이 복받칠 때도 있고 그런다. 내가 묻어가는 이목구비는 아닌가보다.(웃음)
-17일 개막하는 DMZ영화제가 이제 5회를 맞았다. 일산으로 아예 무대를 옮겼다.
▶관객의 접근성이 문제였다. 서울에서 파주까지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개막식은 의미있는 장소에서 하지만 조금 더 관객들이 가까이 올 수 있는 곳에서 영화제를 열었으면 했다. 그래서 일산 라페스타 일대와 일산 아람누리가 무대가 됐다. 물론 그 지역,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도 컸다. 준비는 착착 잘 진행되고 있다.
-개막식 장소가 특이하다. 캠프 그리브스, 지명부터가 생소한데.
▶최북단 도라산역이 DMZ 바로 앞에 있고 DMZ 속으로 들어가면 마을 두 개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DMZ 가장 가까운 곳에 과거 캠프 그리브스라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1953년부터 50여 년간 미군이 주둔하다 2007년에 반환된 공여지다. 그 곳에서 최초로 영화제를 하는 것이다. 우리 개막식 장소가 점점 야금야금 북쪽으로 전진하고 있다. 개성에서도 하고, 평양에서도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5회다. 감개가 무량하겠다.
▶1~2회는 우왕좌왕 하기도 했는데 이제 5회에 이르다보니 자체 동력이 생겼다. 스스로 돌아가는 힘이 생겼다. 가장 고마운 점이다. 나 역시 비교적 수월하게 가고 있는 거지. 여전히 직접 최종 실무자도 만나고 통일부 관계자도 만나고 해야 하지만 훨씬 쉬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편안하게 하고 있지. 프로그래머가 들쑥날쑥 한 게 문제였는데 이번 맹수진 프로그래머가 굉장히 잘 해주고 있다. 아주 유연하고 작품 선정도 좋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자체가 정치적인 색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을 텐데, 정도를 잘 지키며 5회까지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이끌어온 느낌이다.
▶정치적 영향을 안 받고 살아왔다. 한 때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연락이 온 적도 있었다. 강정마을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틀고 하던 시절이다. 경기도나 도지사 주변도 내게 어떤 압박하는 정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영화제고 고유의 목소리가 있는 영화제다. 눈치 보는 영화제도 아니고 눈치 보는 프로그래밍도 안 한다. 그러니까 우리 다양성영화 선정위원들이 '천안함 프로젝트'도 틀었던 거다. 앞서 밝혔듯 내 권한 밖의 일이다. 지원사업 관련 책임자가 그런 지원이나 선정작업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철칙이다. 다양성영화 사업을 좋은 취지로 했지만 내가 관여하면 좋은 취지가 무너지지 않겠나.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으니. 판을 열지만 개입은 안 한다. 그렇게 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고집있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대체 뭔가.
▶좀 힘든 작업을 할 때는 스스로에게 '너 이거 왜 하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이런 일은 영화나 드라마 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어쨌든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 금전적인 보상이 있다. 그런데 연극 하고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일을 하고 하는 건 돈도 안 되고 시간을 뺏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그 자체가 가장 큰 힘이 된다. 왜 그걸 하겠냐. 바로 의미있고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해서다. 연기를 보여주면서 그만한 대가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 이의 일을 하면서 보람을 찾고 또 봉사를 하는 거다. 봉사하는 사람이 외압에 흔들린다면 그건 누구한데 잘 보이려고 그걸 하기 때문인 거다. 그럴 거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나야 이거 해서 뭘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디스플레이 하러 온 사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영화제가 좋고 그것이 김문수 도지사에게 좋으면 둘 다 좋은 건데, 지금 색깔이 안 맞는다고 일부러 끼워 맞추고 하는 그런 짓을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다큐영화제를 5년째 이끌며 매력을 크게 느꼈을 것 같다. 영화제 트레일러도 직접 만들었는데 다큐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은 생각은 안 드나.
▶극영화와는 또 다른 살아있는 감동이 있다. 충격을 느끼기도 하고. 영화에 대해 강의도 하지만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영화를 만들면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이 되겠다' 하는 생각은 들더라. 트레일러를 찍을 때도 보통 할아버지를 출연시켰다. 그런 분에게 어떻게 연기를 시키나.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 될 것 같은 거다. 그만한 연기자가 없더라. 물론 이순재 선배님 같은 능숙함이야 없지만 그만한 자연스러움이 있겠나.
-직접 시나리오도 쓰는지.
▶물론이다.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남자의 집착에 대한 이야기다. 10년간 쓸데없는 집착을 하고 산 남자의 이야기. 결론은 여자는 굉장히 위대하다는 거다.(웃음) 크게 안 가고 5000만원만 들여서 직접 찍어볼까 한다. 제목은 '장롱 안 남자' 쯤이 되려나.
-가까운 다른 감독들에게도 시나리오를 보여줬는지. 평가가 궁금하다.
▶전규환 감독은 대폭 지지했다. 김기덕 감독은 그거면 10분이면 다 찍으니까 살을 더 붙이라더라. 앞으로는 검사 안 받아야겠다. (웃음)
-'뫼비우스'로 오랜만에 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로 복귀한 소감이 궁금하다.
▶옛 친구, 옛 형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만나서도 술 한 잔 했는데 좋더라. 떨어져 있는 동안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같으시더라. 오히려 더 좋아지셨더라. 그래서 더 신뢰도 생겼다. 예전에는 감독님을 형이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형 소리를 한다. 감독은 감독이지 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더 생각이 열린 것 같다.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예비 관객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는 생각, 지루하다는 생각이 직접 와서 보고 나면 분명히 깨질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극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직접 와서 보고 느끼셨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