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병헌이 "배우가 되고 나서도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19일 부산시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가 진행됐고, 배우 이병헌이 참석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액터스 하우스는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동시대 대표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관해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산국제영화제만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다.
이병헌은 올해 영화 '승부'에 이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프론트맨으로 호평받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는 영어와 한국어 더빙을 모두 소화하며 악의 화신 '귀마' 역할을 맡았다.
이병헌은 "'오징어 게임'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거기 참여한 대부분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거다. 물론 창작자는 큰 포부가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게 되고, 인기를 떠나 현상을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저는 너무나 운이 좋은 케이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스타라거나 해외 프로젝트 얘기를 들으면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저로서는 긴장 많이 하고, 나름대로 심사숙고하고, 근데 마지막에 선택할 때는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한다"고 전했다.
그는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2009, 이하 '지.아이.조')을 언급하며 "제가 당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하 '놈놈놈'), '나는 비와 함께 간다'(2009) '지.아이.조'를 선택 못하고 있었다. 다 뭔가 좀 아쉽고, '하지 말까?'라고 생각했던 작품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놈놈놈'도 거절했다가 김지운 감독님한테 설득당해서 '놈놈놈'을 하게 됐다. 그리고 '지.아이.조' 출연이 고민돼서 물어봤던 게 김지운, 박찬욱 감독님이었다. 저를 더 힘든 상황으로 만들었던 게 박찬욱 감독님은 해보라고 했고, 김지운 감독님은 '뭘 그런 걸 해'라고 하시더라. 두 분이 다르게 답하니까 더 미궁 속으로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세 작품 다 하기로 했는데 일정이 맞물려 있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어떤 작품을 결정할 때 결국엔 저도 나중엔 후회하지 말고 해보자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개막작 '어쩔수가없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박찬욱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2000), '쓰리, 몬스터'(2004) 이후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 이병헌은 "제가 공익 근무 할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에 돈을 벌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6개월 동안 공익근무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제가 마지막 세대였다. 소집해제 직전에 '공동경비구역 JSA' 대본을 받게 됐다. 그때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근데 박찬욱 감독님과 첫만남은 그게 아니었다. 제가 1990년대 중반에 영화 두 편을 말아먹고, 세 번째 영화인 '그들만의 세상'(1996)의 기술 시사가 있는 날이었다. 조감독이 와서 바깥에 어떤 감독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더라.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이병헌 배우와 꼭 작품을 하고 싶으니까 잘 봐달라고 하더라. 알겠다고 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포니테일 헤어스타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첫인상이 별로 안 좋았고,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분과 작업을 안 할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근데 그분도 이미 한 편의 영화를 말아먹은 박찬욱 감독이었다"며 "당시에는 신인 감독이 한 편만 망해도 투자받지 못했고,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망한 감독과 배우가 만나서 으쌰으쌰 해보자고 시작한 게 '공동경비구역 JSA'였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과 작업하면 깨닫게 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저한테 감독을 권유하는 제작자, 감독이 많았는데 그중 박찬욱 감독님도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감독님과 작업하는 중에 그런 마음이 싹 가신다. 얼마나 디테일하고 하는 일이 많은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분량의 일을 해내고 계신다. 저게 감독의 일이라면 나는 못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 창의적이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접목하는데 단순히 웃음을 위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의미까지 담겨있다"고 감탄했다.
연기 경력 35년 차인 이병헌은 "저는 사실 배우가 되고 나서도 배우 할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배부른 소리 같고,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욕먹을 일이지만, 어머니 친구분이 방송국 시험 보라고 하셔서 등 떠밀리듯이 했다. 어디서도 연기해 본 적이 없다. 대사라는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는 기다리는 직업이다.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이 올 때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난 왜 안 될까'라고 자책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근데 뭔갈 계속 준비해야 한다. 어떤 걸 시켜도 다 해낼 수 있는 준비된 배우는 그렇게 쉴 수 없다. 계속 그 사람을 찾게 돼 있다. 영어가 됐든, 수영이 됐든, 승마가 됐든 많은 것을 배우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26일까지 영화의 전당 일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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