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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10년만에 '올드보이'를 말하다(인터뷰)

박찬욱 감독, 10년만에 '올드보이'를 말하다(인터뷰)

발행 :

김현록 기자

디지털 리마스터링 '올드보이'..10년만에 재개봉하는 박찬욱 감독 인터뷰

박찬욱 감독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2@
박찬욱 감독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2@


꼭 10년만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가 재개봉한다. 필름으로 촬영했던 당시 버전을 박찬욱 감독이 직접 스크래치를 지우고 먼지를 걷어내고 색감을 매만졌다.


혹자는 '레전드의 귀환', '전설의 재림'이란다. 종교적 냄새까지 물씬 나는 수사다. 그러나 누가 딴지를 걸겠는가. '올드보이'다. 세계 100대 영화, 1000대 영화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리는 명작이자, 해외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늘 첫 손에 꼽는 인기작. 200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근친상간 설정-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수작이다.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레전드'란 소리에 '피식' 웃으며 "내 영화 9개 중 하나"라고 쿨하게 답한 전설의 마스터는 '올드보이'에 대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혼자 듣기 아까워 10년을 묵힌 뒷이야기, 10년간 생긴 새 이야기를 전한다. 가능한 자세히.


-'올드보이'를 10년만에 재개봉하는 기분은 어떤가.


▶재개봉을 위해 다들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최민식씨는 파리에 가고 하니 미리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오달수 김병옥 윤진서 유연석 이승신…. 자주 만나는 사이도 있지만 그렇게 모인 게 처음 있는 일이다. 아주 감개무량했다. 최민식이랑 나는 많이 늙었고, 머리도 새고, 배도 나오고. 유지태와 윤진서는 똑같고. 강혜정은 더 어려졌다. 그런 변화 내지 변화 없음이 재미있었다.


-어떻게 디지털 재개봉을 계획했나.


▶당시 함께 한 임승용 피디가 현재 용필름 대표다. 그 분이 10년만에 재개봉 의견을 냈고, 나는 이참에 디지털시네마로 만들 기회가 될 것 같아 함께했다. 필름 프린트밖에 없는데 1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세계 여기저기서 낡은 프린트로 상영을 했으니 얼마나 엉망일지 안 봐도 뻔 하지 않나. 깨끗하게 디지털 시네마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돈이 드니 핑계가, 명분이 필요했다.(웃음)


-마침 스파이크 리가 감독한 '올드보이' 리메이크 버전이 개봉을 앞뒀다.


▶맞춘 것처럼 공교롭게 됐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그들도 10주년에 맞춰서 영화를 개봉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웃기죠.




박찬욱 감독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2@
박찬욱 감독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2@


-자기 영화를 다시 잘 안 본다고 들었는데.


▶절대 안 본다. '올드보이'는 DVD 코멘터리 작업한다고 본 게 마지막이었다. 색보정 땐 사운드를 완전히 없애고 이미지에만 집중한다. 몇 초 단위로 정지해 놓고 만진다. 온전히 보는 건 오는 20일 시사회가 처음이다. 8~9년만에 보는 셈이다.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올드보이'는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레전드가 됐다. 많은 해외 스타도 감명깊게 본 영화로 '올드보이'를 꼽곤 했다. 레전드의 창조자인 셈인데.


▶부담은 없다. 그런 건 안 느끼는 편이라. 그저 여러 영화 중 하나, 내 아홉 개 장편 중 하나다. 고마운 일인데 다른 영화도 많으니까 다른 영화도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올드보이'와 관련해 해외 관객이나 기자들과 있었던 일 중에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없나.


▶세계 어디를 가도 사인 해달라고 오는 사람들 중에 장도리를 내미는 사람이 꼭 있다. '올드보이' 직후에는 팬이라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 남자였다. 예전에는 무섭게 생긴 남자들이 장도리 들고 줄 서 있는 일이 정말 많았다. 그 이후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은 여자들이 조금 더 많아졌다. '친절한 금자씨'도 했죠, '박쥐'도 옥빈이가 강렬하지 않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있고, '스토커도' 있고. 이제는 좀 견딜 만 하다.(웃음)


한국에서는 절대 안 나온 질문인데 외국에서는 꼭 산낙지 이야기를 물어본다. 배우에게 산낙지를 먹이는 게 충격적으로 보였나 보다.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웃긴다. 찍을 때 숨어서 웃느라 NG도 났다. OK샷도 내가 웃어버려서 웃기 전까지만 썼다. 낙지가 다리로 최민식의 코를 감는데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본인은 힘들었을 텐데, 서로를 늘 놀리며 장난치던 사이라 못 참겠더라.


-'올드보이'가 잔혹한 영화 만드는 감독이라는 평가에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내가 폭력적인 영화를 만든 건 사실이니까 억울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내 영화를 많이 사갔던 영국의 타탄이라는 회사가 DVD를 내면서 '아시안 익스트림'(Asian Extremes)이라는 브랜드를 썼다. 내 것 말고도 아시아 여러 나라 호러, 스릴러를 내는데 하필 그 이름이 '아시안 익스트림'이었다. 그것이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용어처럼 사용이 됐다. 아시아 감독이 서양에 소개될 때 쉽게 이해되는 레이블, 브랜드가 된 셈이다. 편리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까 너무 좁은 개념이고 한쪽 방향만 보는 것이라 작품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는 장애가 되는 범주가 돼 버렸다. 한동안은 편협하게 이해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은 희미해 진 것 같아 다행이다. 그걸 깨 보려는 노력이 바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다. 로맨틱 코미디 아닌가!


-'올드보이'는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다른 감독도 그럴 텐데, 내 경우는 어떤 영화를 만드는 데 제일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바로 전에 만든 영화다.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영화를 선보이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가 지루하고 싫증이 나니까. 전 영화였던 '복수의 나의 것'은 미니멀하고 드라이하고 하드보일드하지 않나. 그러니까 이 영화는 과잉된 스타일이 있는 거다. 송강호와 최민식의 차이도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가 차가웠다면 '올드보이'의 최민식은 막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열기가 있다. 그건 최민식의 폭풍 같고 불꽃같은 성격과도 잘 맞았다. 나 역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근친상간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을 사실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가는 너무나 불편한,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이 뻔했다.


복수극이기도 하지만 근친상간이라는 모티프를 굉장히 원형적인, 신화 같은 옛날 이야기 느낌을 간직하게 하고 싶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벽지만 해도 공간마다 강렬한 벽지, 패턴이 나오지 않나. 인공으로 창조된 허구의 느낌, 비현실적인 느낌을 내고 싶었다. 영화적 기법도 많이 사용했다. 같은 이유에서다. '복수는 나의 것'은 광각렌즈로 넓게 펼쳐 놓고 편집의 기교도 별로 없이 제시하는 영화였다. 날 것 대로 현실을 보여줬다면 이건 영화 테크닉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이런 거 잘해요'가 아니라 영화적 인공미를 내고 싶었다.


-촬영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최민식씨와 장난치던 생각이 난다. 바른 생활 사나이 유지태의 고지식한 태도가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 그것 가지고 최민식씨와 내가 많이 놀려먹었다. 혜정이는 우리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할까. 당시도 한 적이 있는 이야기인데, 정사 장면을 찍을 때 보통은 여배우가 벗고 있으니까 여자 스태프만 남기고 남자 스태프는 꼭 필요한 몇 명만 남기곤 한다. 그러고도 '컷' 하면 담요 씌워주고 그런다. 그런데 우리의 강혜정 선수는 감춘달까 하는 게 없었다. 너무나 프로다웠고, 오히려 우리가 무안해하지 않게 배려를 해줬다. 그 때 강혜정은 20대 초반인데다 경험 많은 배우도 아니었는데, 최민식씨와 내가 정말 감탄을 하며 '너한테 배운다' 그래가며 찍었던 생각이 난다.


박찬욱 감독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2@
박찬욱 감독 /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2@



-'올드보이' 하면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 장도리신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도 복도에서 롱테이크 액션만 하면 그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정두홍 무술감독은 그 소리를 들으면 웃을 거다. 정두홍 액션 연출의 역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장면이 아니다. 훨씬 고난도의 화려한 액션을 많이 만든 사람이니까. 넓게 떨어져서 지켜보며 한 테이크로 오래 간 것일 뿐인데 액션영화로 남을 명장면이라고 하면 코웃음을 칠 텐데.(웃음)


촬영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리허설을 딱 한 번 하고 찍자고 했다. 원래는 여러 샷으로 쪼개져 있었다. 편집해서 하나의 액션 시퀀스로 만들려고 액션 안무를 오랫동안 했다. 나눠서 찍기 전에 전체 마스터샷을 찍으면 편집할 때 빈 구석이 있으면 쓰면 되겠다 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NG가 나도 중단하지 말고 넘어가고, 진짜같이 안 해도 되니까 힘 빼지마라 하고 찍은 거였다. 그러고 나니 최민식씨가 너무 지쳐서 주저앉아 헐떡헐떡 하는 거다.


늘 서로를 놀려먹으며 현장의 낙으로 삼던 저는 '역시 연로하신데… 미안하다' 하면서 놀려댔다. 보통 때 같으면 최민식씨도 맞받아칠 텐데 그것도 못 하고 있더라. 그런 중년 사나이의 피로, 고독 이런 게 숭고하게 다가오더라. 그 때는 최민식씨가 살도 빠지고 멋있지 않았나. 그래서 그렇게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비슷하게 찍은 장면을 본다거나 하면 최민식씨 생각이 많이 난다.


-당시 근친상간 설정은 일본 만화 원작에도 없던 이야기고 충격적이라 보안 각서까지 쓰고 단단히 함구령을 내렸다고 들었다.


▶마지막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 없는 각본을 받은 사람도 있다. 스토리보드에서 빼기도 했고. 언론에도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 호들갑에 대해서 나는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그게 비밀이 지켜질 것 같아' 했는데 지켜졌다. 배우나 스태프가 일단 비밀을 지켜줬고 다른 사람들도. 나중에 프로듀서에게 놀려서 미안하다고 했었다.


-'올드보이'의 마지막을 두고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했다. 과연 오대수는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한 것인가.


▶최면술사가 그런 말을 미리 한다. 이게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일부러 불명확하게 하려고 집어넣었다. 나로서도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어떤 결말을 원하느냐는 자기 성격에 달린 문제다. 무엇이 해피엔딩이냐에 대한 답도 다를 수 있다. 역설적인 거다.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이 해피엔딩일까. 부녀가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계속 연애를 한다는 거지 않나. 근친상간 관계를 유지한다는 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영화의 패러독스다. 반대로 기억을 지우는 데 실패했다면 더 이상 두 사람은 연인으로 지낼 수 없다. 부녀 관계로서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올드보이'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 때의 대수와 미도는 10년 뒤에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오대수의 웃음을 어떤 감정이냐고 보느냐에 따라 갈리겠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다.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다. 그 기억을 지우려는 시도가 중요했던 거라고. 외면하고 싶던 진실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그걸 지워가면서까지 이 사랑을 지키고 싶다는 욕심, 욕망을 품었다는 것. 인간사회의 윤리조차도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랑. 어떻게 보면 추악하다고 할 수 있고, 숭고하다면 숭고한 것이다. 신화 속 영웅이나 할 수 있는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이 또한 있는 것이다. 이번 개봉을 통해 10년 전에는 어려서, 혹은 다른 이유로 못 보셨던 분들이 보신다는 데 가장 의미를 두고 싶다.


-주위에 예전에는 못 봤다가 새로 보게 되는 사람이 있나.


▶우리 딸. 지금은 대학생이 돼서 작년에 DVD로 봤다. 칸영화제 당시엔 같이 레드카펫에 올라가서 우리 부부는 극장으로 가고 딸은 옆으로 빠져서 영화사 분이 호텔에 데려가 재웠다.(웃음)


-예비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팁을 드리자면, 당시엔 관객이 이게 뭐기에 그렇게 꽁꽁 감추고 법석을 떠나 하면서 보다가 반전의 순간에 놀라고 그랬을 것이다. 그 때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대신에 그 충격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위해서 처음부터 영화가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보며 생기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것까지도 아주 세심하게 디자인됐다는 것을 음미할 수 있으니까. 디지털 상영 시대에 볼 수 있는 필름 질감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주 지글지글하다. 그 느낌은 그 영화의 성격이고 영화의 일부기 때문에 그대로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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