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지안(32)이 고운 한복을 갈아입고 스타뉴스의 카메라 앞에 섰다. 2003년 미스춘향 출신다운 단아한 매력이 가득 풍겼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전혀 그러질 못했다. 지안은 최근 개봉, 작은 영화의 어려움을 딛고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 '함정'(감독 권형진)에서 기구한 여인 민희 역을 맡아 시선을 집중시켰다. 외딴 섬의 후미진 음식점을 찾아갔다가 끔찍한 위기를 맞이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스릴러에서 지안은 위험한 남자와 함께 섬에 사는 의문의 여인 민희로 분했다. 화재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서 강압 속에 살아가는 그녀는 기구한 처지로 연민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치명적인 여성미를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신 또한 보는 이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서울예대 출신인 그녀는 2003년 미스 춘향이 된 뒤 임유진이란 본명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활동이 여의치 않아 일본에서 모델 활동도 했다. 몇몇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왔고 비교적 비중 있는 역할도 맡았지만 여전히 무명이었다. 최근엔 연기를 접다시피 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언니와 함께한 웨딩슈즈 사업에 한창 재미를 느끼던 지난 해 8월, 그녀는 문득 연기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울며 기도하던 시절, 뜻밖에 대학 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재능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느냐'며 아쉬워한 교수가 추천을 해 오디션을 보러 간 작품이 '함정'이었다. 어떤 이야기인지도 모른 채였다. '보고 의향이 있으면 답을 달라'며 권형진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냈고, 지안은 첫 순간부터 민희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사업에 빠져 잠시 잊었던 연기가 너무나 간절해진 때였어요. 주위에선 나이도 찼으니 그만하고 시집 가라고 하고요. 그렇게 목말라하던 때에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게, 마치 운명처럼 연락이 왔던 거죠. 시나리오를 받아 읽는데 민희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안 보였어요. 이전에도 노출 많은 영화를 거절한 적이 있었죠.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거든요. 이건 노출이 있어야 할 이유가 분명했고,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였어요. 그리고 감독님을 믿었죠. 모험이고 도전이었지만, 연기자로서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녀 생각에도 민희는 어떤 연기자가 해도 매력적으로 보이겠다 싶은 캐릭터였다. 익히 알려진 배우들도 탐냈던 역이었다 한다. 지안은 무명인 자신을 믿어준 권형진 감독의 기대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상 생활에서도 성대를 다친 사람처럼 말을 끊고 두문불출하며 살았다. 안쓰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민희도 이랬겠구나' 생각했고, 실제 연기에 도움도 받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운 민희의 목소리는 연구와 고심의 결과다.
"가장 신경을 쓴 건 화재로 성대를 다친 사람이 내는 소리를 찾는 거였어요. 어디에도 사례가 없고 영상도 없었어요. 신문기사에 딱 한마디 '바람빠진 쉰소리'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기대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 고민하면서 소리를 만들어냈어요."
촬영 땐 노출에도 상관하지 않았다. 작품을 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이라 두려웠지만 리허설을 거쳐 막상 슛에 들어가니 생각 외로 NG없이 풀렸다. 카메라에 어찌 비치나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지안은 '원래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게 안 보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정작 위기의 순간은 시간이 지나 찾아왔다.
"개봉을 앞두고 기술시사에서 처음 영화를 보는데 멍한 거예요.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할 말을 잃었어요. 눈물이 나려 하는데 어찌어찌 수습하고 차에 탔는데 전화로 언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막 울음이 터졌어요. 후회해서가 아니고 묘한 감정이었어요. 언니가 '넌 그만큼 역할에 충실했던 거야.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하는데 그 말에 더 울컥했던 것 같아요. 그 후엔 그렇지 않았어요. VIP 시사에서 두 번을 보는데 그 때는 안 보였던 부분이 다 보이더라고요. 다만 딸이 주연으로 작품 들어간다고 너무 좋아하셨던 엄마는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연기이고 작품인데 엄마는 딸이 보이실 수 있잖아요. 엄마는 보지 않기로 약속하셨어요."

지금 지안이란 이름은 '함정'을 내놓으며 새롭게 지은 예명이다. 모든 것을 지혜롭게 보라고 지혜 지 자에 눈 안자를 넣어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셨다. 지안은 "이번 작품으로 다시 연기가 하고 싶어졌고, 연기의 전환을 맞았고, 그래서 이름을 바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연기를 그만두려 했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이었다"면서 "다시 하니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졌다. 지금도 모든 스태프를 하나하나 기억한다"고 감상에 빠졌다. 무명의 배우였던 시간을 지워낸 지안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추석을 보낼 계획이라는 지안은 고운 한복 차림으로 다부진 각오를 다졌다.
"노력했는데 안 됐다면 저 스스로를 토닥토닥 할 수 있어요. 못하든 잘하든 돌이켜봤을 때 나는 최선을 했다 할 만큼 노력하고 싶어요. 그냥이 아니라 죽기살기로. 그렇게 노력해서 모든 사람에게 중독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보고 나면 또 생각나고, 또 찾게 되는 배우. 죽기살기로 열심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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