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의성. 본명 김의성.
◆1965년 12월 17일생.
◆키워드: 서울대, 한명회, 개저씨, 명치, 프로 네티즌….
◆스크린 데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
"'W' 종방연을 하는데 스태프가 다 사진을 2장씩 찍자고 그래요. 웃으면서 한 장, 무섭게 한 장."
고된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종방연까지 마친 다음 날, 배우 김의성(51)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여름을 달군 천만 좀비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에 이은 히트 드라마 'W'(극본 송재정·연출 정대윤 박승우)에 이르기까지, 실로 뜨거운 몇 달이었다. 10년 넘는 공백 끝에 2011년 컴백, 크고 작은 역할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온 그의 진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김의성은 좀비로 가득 찬 KTX에서 만나선 안될 아저씨였다가, 곧 창작의 고통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한 웹툰 작가가 됐다. 마동석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명치를 세게 때려주고 싶던 악역도, 매회가 반전이었던 드라마 속 주역도 실감나게 그려보인 그에게 자연히 이목이 쏠렸다. 김의성은 그저 "연기 효과가 좋은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겸손한 모습이었다.
여름 극장가의 포문을 연 '부산행'은 '돼지의 왕',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하는 좀비영화라니 '무조건 해야 된다'며 들어간 작품이었다. '맞는 역할이 있긴 하다'는 말에 시나리오도 안 보고 일단 합류를 결정한 뒤 '앗싸' 하며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역은 좀비보다 짜증 나는 악질인 버스회사 상무 용석. "정말 깊은 한숨을 쉬었어요.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악역이잖아요." 촬영 땐 재밌게 하고 잠시 잊었다가 개봉 전 기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엔 '이대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람들이 아침드라마 보곤 등짝을 때려도 영화 보건 안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건 '길 가다 얻어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타기가 필요했어요."

평소에도 SNS를 즐겨 쓰는 김의성은 '할 말 있으면 여기다 하세요, 다 받아드립니다'라며 개인 SNS를 열어 놨다. 열띤(!) 반응에 속에 누적관객 1200만을 넘기면 마동석에게 '명존세'를 부탁하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프로 네티즌'인 김의성이 명치를 아주 세게 친다는 의미인 '명존세'를 모를 리 없다. 정식 상영을 마무리한 '부산행'의 최종 관객수는 1155만 명. 45만명 차로 공약 실천을 피한 김의성은 "제가 엄청난 계산을 하고 부른 숫자"라며 "의외로 (관객이) 안 떨어지고 가서 중간엔 후회되고 아찔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면 'W'의 오성무는 박원상이 맡은 한철호 역을 할 줄 알고 미팅에 나섰다가 받아든 캐릭터였다. 작가와 연출자는 '죄송한데 다른 역을 해줄 수 있느냐', '해주셔야 퍼즐이 맞춰질 것 같다'고 했다. 김의성은 '한효주 아빠 캐릭터면 자주 보겠다'는 마음도 들었고, 웹툰 작가 역할도 재밌겠다 싶어 "아 예, 그러시죠" 했단다. 오성무는 겉보기엔 멀쩡한 인기 웹툰 작가이지만 만화 속에 끌려갔다 나온 남모를 비밀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오성무는 살인마 진범과 웹툰의 창조주 사이 설정값에 매여 미쳐버렸고, 매회 섬뜩한 다른 얼굴로 시청자를 만났다. 6회까지 나온 대본을 보고 만난 송재정 작가는 김의성에게 '이 인물은 아버지고 만화가고 나중엔 웹툰 세계에도 들어가는데 '끝판왕' 같은 게 된다'고 했었다. 사실 경고는 다 미리 했던 셈이다. 김의성은 "한국에서 중년 남자 배우가 그런 캐릭터를 맡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나중엔 대본을 하나 받을 때마다 이 분이 나를 테스트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고백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처음부터 힘들었고, 끝까지 힘들었다. 쉴 새 없이 달렸기에 잠시 휴식을 가질 생각이란다.

김의성이 1987년 극단 천지연에서 연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째. 1990년대 그는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인공을 맡는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한 훈남 배우였다.
데뷔 영화인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에선 채시라의 전 애인, 그의 표현을 빌리면 "되게 후진 전직 운동권 문학청년" 역할을 맡았다. 김의성은 "천하의 채시라 옆에서 엄청 떨었다. 따져보면 정선경, 이미연… 초반엔 여복이 있었는데, 지금은 딸 둔 아빠로 나온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W' 첫 미팅 때 한효주씨 아빠란 이야기를 듣고 '한효주씨가 딸로 나오면 아빠가 너무 젊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하고 물었더니 작가와 감독이 '아니요, 괜찮은데요'라고 입을 모으더란다. "아, 이제 이렇게 됐구나 했죠.(웃음)"
사실 2011년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으로 스크린에 복귀하기 전, 그는 베트남에서 사업가의 삶을 살았다. 돌연 연기에 회의를 느껴 '절대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부친의 병간호 차 한국에 왔다가 홍상수 감독의 설득에 '북촌방향'에 출연했고, 다시 연기의 맛을 느꼈다.
"사는 것만으로도 연기가 는다는 것, 그게 이 직업의 특징인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기술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그야말로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하는 것, 존재감이라고 말하면 상투적 표현이 되어버리지만 그렇게 세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필요하니까요. 나이를 먹고 삶을 허비하면서 저도 모르게 힘을 쌓아갔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삶을 놓친 시기에 저 안에 쌓인 게 있다는 게, 배우로서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게 신기하죠."

공교롭게도 복귀한 그는 어쩌면 평범하다고 할 사람들의 마비된 양심, 무심한 악행을 거푸 실감나게 그려보였다. '남영동 1985'(2012)의 강과장, '26년'의 최계장, '소수의견'(2015)의 홍재덕 검사, '오피스'(2015)의 김부장, '특종:량첸살인기'(2015)의 문이사, '내부자들'(2015)의 편집국장 등 이름 대신 직함으로 즐겨 불리는 수많은 중년 캐릭터들이 그러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하수인으로 등장한 '암살'(2015)의 집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흔히 '꼰대'며 '개저씨'라고도 하지만, 누구라도 한 발 헛디디면 저렇게 될 수 있기에 더 소름끼치는 악인들이다.
김의성은 "아는 세계라 더 잘 연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평범하게 나이 먹어가면서 악해지는 게 뭔지 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소수의견' 개봉을 앞두고 만났던 당시, 묵직하게 남았던 그의 말은 다시 옮겨 본다. "저희 세대가 교육받고 경험한 안 좋은 것들이 많아요. 그냥 살면 못된 사람이 돼 있어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살면 저희들 90% 이상이 성희롱 하고 성추행 하고 그럴 지도 몰라요. 우리 세대가 보기엔 평범한 일인데 젊은 세대나 여성들, 약자가 보기엔 굉장히 이상한 일인 거죠. 더 애쓰고 조심하고 노력하며 살아야 해요."
강렬했던 '부산행'과 'W', 용석과 오성무를 돌아보던 김의성은 "이젠 평범한 악을 넘어선 역할을 한다"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SNS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는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배우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해 1인시위를 하기도 했던 그는 SNS에 날선 정치적인 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최근엔 글 쓰는 빈도를 줄이고 용도별로 구분을 해 쓰고 있단다. 트위터가 아는 사람들끼리 좁고 거칠게 노는 곳이라면, 다수에게 열린 페이스북 페이지는 연기자로서 서비스하는 공간이나 다름없다. 그럼 인스타그램은? "자랑용"이라는 게 그의 답. 김의성은 "아직도 전 민간인 마인드라 맘속에선 신기하다. 한효주랑 사진 찍고, 정우성이랑 사진 찍고, 이걸 내가 어디다 자랑하지 싶으면 거기에 올린다"고 귀띔했다.
"조심하기도 해요. 제가 잃을 것이 많아져 겁을 먹었다?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그런 방식으로 떠드는 것이 그냥 배설할 때 시원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과 날 세워 부딪치는 것이 무상하달까. 진짜 프로 네티즌이 된 거죠. 다 안다고 할 때 실수가 있긴 하지만, 이젠 가능한 즐겁게 그 공간을 이용하려고 해요."
예능에 출연하란 제안도 있지만 당분간은 생각이 없다. "예능으로 인생이 바뀌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로 바뀌고 싶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배우란 연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은 '3년 짜리 계약직'이라 생각한다는 김의성은 막 그 3년 재계약을 마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지금에 오니 제가 재계약을 해서 3년 정도는 밥을 먹고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있는 거죠. 3년이 지나면 또 재계약 시기가 올 거구요. 꾕장히 뜨겁게 사랑받던 배우도 '왜 안 보여'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3년 재계약을 하는 거고, 안되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또 스트레스가 오고 최소한 폼을 떨어뜨리지 않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차기작은 딱 정해 찾지는 않고 있어요. 하지만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3년 재계약 후 첫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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