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 '사라진 밤'(감독 이창희)은 흥미로운 스릴러입니다. 이 영화는 2014년 한국에서 개봉했던 스페인 스릴러 영화 '더 바디'(EL Cuerpo)가 원작입니다.
두 영화 모두 시체 보관실에 있던 여성 시신이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미모의 재력가에 여러 기업을 한꺼번에 소유하고 있던 그녀는 사실 살해당한 것이었죠. 범인은 시신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고서 바람피우다 말고 현장에 달려 온 남편이고요. 두 영화 모두 이같은 사실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관객에게 알려주며 관객을 사건에 동참시킵니다. 과연 그녀의 시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누가 시신을 훔쳐간 걸까요. 혹시,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걸까요.
같은 인물과 설정, 공간을 공유하지만 '사라진 밤'과 '더 바디'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릅니다. 시작부터 다른 건 김상경이 맡은 형사 캐릭터입니다. 웃음기라곤 하나 없는, 슈트를 고집하는 원작의 진지한 형사는 김상경 특유의 인간미가 묻어나는 유들유들한 괴짜로 변했습니다. 인물간의 관계도 한국 관객의 정서를 고려해 조금씩 변형됐습니다. 묘사의 수위도 다릅니다. 구역질 나는 설정이나 장면은 완전히 빼냈습니다.
볼수록 눈에 띄는 건 진한 감정선입니다. '더 바디'가 감정선을 쪽 말려내다시피 한 서늘한 정서를 내내 유지하다 결말에 모든 걸 터뜨린다면, '사라진 밤'은 김강우가 연기한 사건의 범인, 아내를 죽인 남자의 이야기에 특히 공을 들입니다. 아내를 죽인 남자지만, 그의 속내를 보다 절절하게 그려보입니다. 그래서 바람을 피우며 아내를 죽인 파렴치범의 사연에 연민마저 느끼게 됩니다.
사건과 단서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심리를 애틋하게 그려낸 '사라진 밤'은 지극히 한국적인 리메이크란 생각이 듭니다. 감정 묘사에 치중하는 한국영화 특유의 정서는 종종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라진 밤'에서는 미스터리 스릴러 속 인물에게 보다 공감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감독은 동시에 길지 않은 원작을 10분 가까이 더 줄여 휘몰아치는 반전의 쾌감을 높였습니다. 영민한 선택입니다. 중소배급사를 통해 지독한 비수기에 개봉한 '사라진 밤'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흥행하는 건 이런 한국식 리메이크의 힘이 드러난 결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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