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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탁' 엄마들과 함께 탄 대관람차

'당신의 부탁' 엄마들과 함께 탄 대관람차

발행 :

전형화 기자

[리뷰] 당신의 부탁

사진

아이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엄마가 필요할까? 아이가 홀로서기까지, 엄마의 역할은 무엇일까? 엄마는 과연 뭘까? '당신의 부탁'은 그런 질문을 던진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32살 효진은 친구 미란과 하던 학원을 옮길까 접을까 고민 중이다. 미란이 출산을 앞두고 있기도 하지만 일에 의욕이 없는 탓이다. 상담 겸 말벗 겸 가끔 만나는 커피숍 남자도 딱히 설레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동생에게 연락이 온다. 형이 시골 외할머니에게 맡겼던 아들 종욱을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아이 엄마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외할머니는 치매가 왔단다. 무려 16살 남자아이다. 엄마라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편이 죽었으니, 이젠 그냥 남인 아이를 키워달라는 부탁이다.


미란이 대신 화를 낸다. "네 인생 살라"며. 말만 하면 싸우는 엄마에겐 또 화낼까 이야기도 못한다. 일단 한 번 보자고 했던 게 그만 같이 살게 됐다. 외로웠던 건지, 우울했던 건지, 죽은 남편의 부탁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이유는 모른다. 그 모두 일 수도 있다.


아이 종욱은 말이 없다. 욕심도 없다. 그저 근근하게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게 삶의 목표다. 엄마 대신 아줌마라고 부른다.


외할머니 만나러 간다던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걱정한다. 실종 신고도 한다. 관계를 묻는데 어렵사리 엄마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온다. 아이는 알고 보니 여자인 친구와 친엄마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죽었다던 친엄마가 살아있던 것일까.


그렇게 효진과 종욱은, 여러 엄마들과 만나게 된다.


'당신의 부탁'이란 제목은 이 영화와 맞지 않다. 오히려 영어 제목이 더 영화와 걸맞는다. 영어 제목은 '마더스'다. 엄마들이다. '당신의 부탁'은 누군가들의 부탁이 쌓이고 쌓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누군가의 부탁으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사람들, 그런 엄마들이 아니다.


16살 소년 종욱을 키우는 여러 엄마들의 이야기다. 엄마가 된 효진이, 엄마이고, 엄마가 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이가 생겨서 엄마가 됐지만, 그 역할에서 벗어나고도 싶지만, 그 선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수동적이 아닌 주체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다. 한편으론 아이가 여러 엄마들과 만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치매로 정신을 놓고 있지만 외손주를 부탁한다면 만원을 쥐어주는 엄마, 네가 생겨서 꿈 같은 거 다 포기하고 살았다면서도 바리바리 반찬 챙겨주는 엄마, 집에 제대로 못 들어올 만큼 바쁜 경찰 남편과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 10대에 덜컥 아이가 생긴 엄마, 아이가 안 생기지만 너무 엄마가 되고 싶은 여자, 무병으로 아이 떼놓고 떠난 엄마.


엄마가 그리운 아이와 갑자기 엄마가 된 여자는, 엄마들을 만나면서 함께 걸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당신의 부탁'은 어쨌든 살아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살려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이 엄마들이 아이를 키운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당신의 부탁'은 그래서 주체적이다. 다들 선택한다. 나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환절기'에 이어 '당신의 부탁'으로 돌아온 이동은 감독은 이 선택의 순간을 담담하게 담는다. 비난도, 칭찬도, 꾸짖지도, 격려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선택을 묵묵히 듣는다. 이 묵묵함이 위로한다. 이 우직함이 응원한다. 같이 걸어가는 순간이, 짐을 나눠 드는 순간이, 가족을 만든다고 전한다.


'당신의 부탁'에서 주인공 효진과 종욱은 말수가 적다. 남들이 대신 화낸다. 남들이 대신 토로한다. 역설적으로 적은 말이, 많은 것들을 전한다. 말한다고 다 전해지는 것도 아니요, 말하지 않는다고 안 전해지는 것도 아니란 걸 담담히 그려낸다. 이동은 감독은 여백을 다룰 줄 안다.


효진 역을 맡은 임수정은 매우 좋다. 거리감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엄마와 아이의 거리감, 친구와의 거리감, 썸남과의 거리감, 자신의 엄마와의 거리감, 죽은 남편과의 거리감, 자신과의 거리감. 자로 잰듯한 거리감들이 점차 줄어드는 순간까지 명확하다. 친구 미란 역의 이상희는 보석 같다. 미란이 있었기에 효진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이상희는 더 연마할수록 더 빛이 날 게 분명하다. 종욱 역의 윤찬영은 사춘기를 진짜 사춘기처럼 그렸다. 질풍노도로 표현하기 마련인 사춘기를, 긴장한 초식동물처럼 그렸다. 좋다.


'당신의 부탁'은 아이와 엄마 이야기에 익숙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아니다. 대관람차처럼 천천히 고도를 높이다 천천히 내려온다. 올라가면서 보이는 풍경과 내려오면서 느끼는 감흥이 다르다. 느리지만 정겹다.


4월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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