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1회 칸국제영화제가 8일(이하 현지시간) 그 성대한 막을 올린다. 세계 영화계의 눈이 프랑스 남부의 작은 휴양도시 칸에 온통 쏠리는 12일간의 영화축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이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려 황금종려상 레이스를 벌인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스크리닝에 초청돼 또한 주목받고 있다.

◆'버닝', 韓영화 최초 황금종려상 받을까
특히 8년 만의 신작으로 5번째 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6번째 장편 연출작 '버닝'(Burning, 제작 파인하우스필름 나우필름)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밀양'(2007)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고, '시'(2010)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에는 칸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이창동 감독이 주요 상을 수상할 것이란 기대감도 상당하다. 공식 상영 일자가 오는 16일로,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이 주로 선보이는 영화제 후반부라는 점도 기대감을 더하는 요소다.

'버닝'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가 원작으로,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를 담는다. 요즘의 젊은이,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고민을 새로운 방식으로 담아냈다는 것이 이창동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세 주인공 유아인, 스티븐연, 전종서는 이창동 감독이 작업한 가장 젊은 배우군이다. 이들이 전도연에 이어 칸의 주연상을 품에 안을지 또한 관심사다.

오는 11일 밤 공식상영이 진행되는 '공작'(The Spy Gone North, 제작 사나이픽쳐스 영화사월광) 또한 세계의 눈이 집중된 작품이다. 영화는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반도 전쟁위기론이 나돌던 남북관계가 불과 수개월 만에 드라마틱한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다. 올해 여름 개봉을 앞두고 칸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남북 첩보전 영화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다.
5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는 윤종빈 감독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용서받지 못한 자'(2005) 이후 2번째로 칸에 입성하며, 주연배우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이 처음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을 예정이다.
한국영화는 이 밖에도 김철휘 감독이 연출하고 윤세현 오강진이 출연한 단편 '모범시민'(Exemplary Citizen, 제작 인디스토리)이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쓰레기로 엉망인 경마장 화장실에 말끔한 양복 차림의 주인공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또 칸영화제가 선보이는 단편 필름 라이브러리 '쇼트 필름 코너'에 구상범 감독의 '우체통', 조현준 감독의 '시계' 등 한국영화 37편이 선정돼 칸의 관객과 만난다.
배우 유태오가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연출한 경쟁부문 초청작 '여름'(Leto)에서 러시아 전설적 록가수 빅토르 최 역을 맡아 당당히 레드카펫을 밟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가택연금, 소송, 불참..시작부터 다사다난
올해 경쟁부문에선 아시아 감독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버닝'을 비롯해 21편 중 8편이 아시아 영화다. 이란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스페인 출신의 할리우드 스타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와 호흡을 맞춘 '에브리바디 노우즈'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가운데 중국 지아장커 감독,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터키 누리 빌게 제일란 등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나란히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영화제는 시작부터 우여곡절도 상당하다. '택시'(2015)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란 감독 자파르 파니히는 '스리 페이스'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나 수년째 자국에서 가택연금 상태다. '여름'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또한 러시아에서 가택연금 상태라 참석이 어려울 전망이다. 폐막작인 테리 길리엄 감독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제작자의 소송으로 상영이 불투명하다. 개막 전날인 7일 상영 여부가 결정되는 가운데 칸 영화제는 법원의 판단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넷플릭스의 불참 역시 올해 칸 영화제의 악재였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였던 봉준호 감독의 '옥자' 등 2편의 경쟁부문 초청으로 프랑스 극장업자의 반발에 부딪쳤던 칸이 넷플릭스 영화의 경쟁부문 초청 불가 방침을 밝혔고, 반발한 넷플릭스가 전 부문에 출품을 거부하면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폴 그린그래스의 '노르웨이', 오손 웰스의 미공개 유작 '바람의 저편'의 초청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누벨바그의 살아있는 전설 장 뤽 고다르 감독이 '이미지의 책'으로 경쟁부문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칸은 그의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1965)의 스틸로 올해 칸영화제 공식 포스터를 제작하며 경의를 표한 터다. '블랙클랜스맨'의 스파이크 리 감독도 무려 27년 만에 경쟁에 진출했다.

◆칸에도 닥친 '미투'..심사위원 과반수가 여성
'여성'은 올해 칸영화제에서도 주요 화두다. 세계를 휩쓴 미투(#MeToo) 열풍 속에 칸영화제 역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이 자행된 한 무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성폭력 신고 핫라인까지 만들고 나섰다. 하지만 경쟁부문 초청작이 지난해 19편에서 21편으로 늘어난 가운데서도 여성감독의 작품은 3개(프랑스 에바 허슨 감독의 '걸스 온 더 선', 레바논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 이탈리아 알리스 로르바허 감독의 '라자로 펠리체')로 지난해와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더욱이 2011년 '나치 발언'을 용서받고 '더 하우스 댓 잭 빌트'를 비경쟁부문에 선보이게 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일을 떠올리면 더더욱 의문이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둠 속의 댄서'(2000) 여주인공 비욕이 지난해 촬영 과정에서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다만 칸영화제는 경쟁부문을 비롯해 전 부문에 걸쳐 심사위원 과반수를 여성으로 배치하며 성비에 신경을 썼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도 여성 3인, 남성 2인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렸다. 가장 돋보이는 신인감독을 선정하는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도 총 7인 중 여성이 4인이다.
그 중에서도 경쟁부문 심사위원의 여성파워가 수상작 결정에 어떤 변수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최근 몇 간 9명의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남성 5인, 여성 4인으로 유지해온 칸영화제는 올해 호주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심사위원장으로 하고 배우 레아 세이두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브룬디 싱어송라이터 카자 닌 등 심사위원 5명을 여성으로 배정했다. 중국 배우 장첸까지 배우가 4명에, 캐나다 드니 빌뇌브, 미국 에바 두버네이,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프랑스 로버트 구에디귀앙 등 감독이 4명이다.
과연 이들은 '버닝'을 선택할까.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탄생할까.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은 폐막식이 열리는 오는 19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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