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상업영화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선택과 고민, 염려와 걱정,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이종언 감독은 그럼에도 그 일을 결정했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였던 이종언 감독은 2015년 여름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았다. 가야만 할 것 같아서 갔다. 이야기도 듣고, 설거지도 하고, 같이 울고 웃었다. 그러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동안 세상에는 세월호를 둘러싼 수많은 말들이 뒤섞였다. 처음에 같이 울던 사람들도 이제는 피로하다고 말하곤 했다. 돈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끝도 없다. 이종언 감독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상업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영화 '생일'이 탄생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같이 지내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유가족을 찾은 건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같이 있으면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것인가.
▶있다 보니깐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 2015년 여름에 이제 와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 사건 당시 허리를 다쳐서 누워있었다. 그러면서 뉴스를 보는데 며칠 동안 끄지를 못했다. 진도에 내려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곳에 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1년이 지나 와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원래 알던 분들이 유가족분들과 같이 계셨다. 사진도 찍어드리고, 이야기도 듣고, 설거지도 하면서 지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
-그중에서 왜 생일파티를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았나.
▶일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서 옮기고 싶었다. 이 힘든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서로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재라기보단 생일을 크게 넣은 건..... 일상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데 스스로의 힘과 주변의 도움이 합쳐져 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없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가고. 왜 화자를 아버지로 삼았나.
▶그때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란 설정을 넣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이 보게 될 즈음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3~4년이 지난 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쯤이 되면 사람들이 이 사건에서 멀어져 있을 테니 곧장 이 속으로 들어오기보다 이 아버지를 따라 들어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어주지 못한 우리의 미안한 마음도 같이 담고 싶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 인물이 버터야 하는, 자기 책임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월호 이야기를 상업영화로 만들 때는, 만들어야 한다는 창작욕구와 만들어도 될까라는 윤리가 충돌했을 법한데.
▶그 고민은 이 이야기를 혼자 쓰기 시작하면서 정리됐던 것 같다. 실제 생일 모임을 처음에 동참했을 때는 내 몸의 수분이 모두 증발된 것처럼 울었다. 그러다가 이 생일 모임을 반복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님들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신다. 마치 아이들이 학교에 간 것처럼 곧 돌아올 것처럼, 평소대로 이야기를 하신다. 이미 내가 들었던 (아이의)이야기지만 계속 이야기하신다. 그러면서 더 듣고 더 들어야 하는 게 괜찮은 일이구라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다만 이 영화를 만들 때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말과 태도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어떤 의도를 담으려 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이 일을 있는 그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관점을 담는 게 아니라 그대로 옮기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생일'은 카메라 앵글이 다큐멘터리처럼 주로 정면이다. 부감이나 로우 앵글이 거의 없다. 그런 앵글로 의도를 부각시키지 않았는데.
▶카메라가 조금이라도 부감이나 로우가 되면 촬영감독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처럼 (앵글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앵글이란 게 결국 강조점이다. 그 강조점이 결국 감독의 시선이고.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이도록 하는 게 내 시선이었다.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돌아온 아버지 역을 맡은 설경구에게는 어떤 걸 주문했나.
▶처음 만났을 때 왜 아빠가 2년 뒤에 오냐고 묻더라. 그래서 관객이 3~4년 후에 선배님의 어깨에 올라타고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투성이인 아빠의 마음을 알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 역의 전도연에게는.
▶특별히 주문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전도연 선배는 내가 혹시 너무 들어가서 과하게 하거나, 극 중 인물이 아니라 전도연의 마음이 드러나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현장에서 그런 부분이 있을 경우 이야기를 하면 잘 듣고 수용해서 다시 연기했다.

-세월호 사고로 오빠를 잃은 동생 예솔 역의 김보민은 정말 잘 했다. 정말 잘했지만 한편으론 이 아역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서 세월호 사고와 감정을 체험하는 것이었을텐데. 아무래도 성인 연기자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을텐데. 마음을 살필 어떤 안전장치가 있었는지.
▶보민이는 오디션을 받을 때 미리 받은 대본을 준비해 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해온 게 아니라 아이가 느낄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시나리오를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께 시나리오를 보여 드리고 허락하신다면 영화 속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보민이에게 안 해 줄 수 있는지 여쭤봤다. 선택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뒤에 보민이는 시나리오를 주지 않고 촬영 한 시간 전에 30~40분씩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그날 촬영마다 어떤 감정을 갖고 연기하면 좋을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인지. 그 감정이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것이지만 진짜처럼 나오길 바랐다.
그러는 한편 상담사 선생님을 찾았다. 보민이와 상담사 선생님이 6개월 정도 계속 만나면서 심리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전도연이 맡은 순남 캐릭터를 지금 영화처럼 만든 까닭은. 순남은 다른 유가족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아이의 죽음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캐릭터인데.
▶고통의 크기를 감히 비교할 순 없다. 다만 순남이 그 누구에게도 단 한마디 말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선택한 것 같다. 남편도 그 자리에 없었고, 딸은 어리고. 오롯이 혼자 버티고 살고 있었던 사람으로 그리려 했던 것 같다.
-왜 부부 이름을 정일과 순남으로 했나. 먼저 떠난 아이의 이름이 수호인 것도. 수호천사에서 온 것인가.
▶부부의 이름은 어디에서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수호는 그런 의미이고.
-깜빡이는 현관등. 고장 난 그 등이 깜빡일 때마다 아이가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묘사한 설정은 실화에서 가져왔나.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깜빡이는 센서등만 보면 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생일시는 이규리 시인이 실제 쓴 것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실제 쓴 시인데 그 속에 센서등 이야기가 있다. 다만 영화 속에서는 정일의 이야기가 있기에 시의 후반부는 내가 다시 썼다.
-유가족스러움, 피해자스러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유독 강한 사회다. 그런데 '생일'에선 유가족들의 웃음을 많이 담아냈는데.
▶제가 유가족분들과 있을 때 대부분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그 분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옆에 아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신다. 웃으면서 우리 애가 그래서 그랬잖아요, 이러신다. 그 웃음을 자연스럽게 담고 싶었다.
-돈, 보상금 이야기도 많이 담겼는데. 돈에 대한 사람들의 말들도 있고, 그 돈에 대한 유가족들의 선택도 담겼고.
▶돈은 우리 삶에서 일상에서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유가족분들과 또 제게도 돈과 관련한 말들로 상처가 정말 컸다. 각자의 선택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 말들이 어떤 상처를 주는지, 충분히 알지 못해서 그럴지 모르니 보여드리고 싶었다.
-수호의 친구들 이야기를 담았다.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세상에서 잊혀지기를 바라고, 절친한 친구를 잃은 또 다른 친구는 어머니를 보기가 미안해서 피해다니고.
▶이 참사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도 변화시킨 것 같다. 그런 것을 담담하게 옮겨 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가까이에 있었던 친구, 살아남은 친구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가고 싶지만 웬지 미안한 마음, 견디며 살고 있는 그 마음을 담고 싶었다.
-사고 당시에는 같이 울다가 이제는 운다고 뭐라고 하느냐는 대사는 직접적인데.
▶꼭 비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상이 있다. 일상이 소중하고. 그게 나쁜 마음도 아니고 잘못된 마음도 아니다. 예전에는 같이 울다가 지금은 안 운다는 비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럼 마음들도 같이 이해되게 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암에 걸려서 보상금을 받고 그게 미안해서 유가족 모임에 안 나오는 유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분은 영화 속에서 더 설명없이 마지막 생일 모임에 모자를 쓴 채 등장한다. 왜 편집을 했는지.
▶촬영도 다 했다. 그렇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생일'을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만들기로 선택한 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상업영화 틀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선택해야 했다. 꼭 담고 싶었지만 영화 속 감정에 집중하도록 선택을 해야 했다.

-왜 지금의 엔딩인가. 왜 일상인가.
▶원래 시나리오에선 엔딩이 낚시터였다. 촬영하면서 가장 일상에서 끝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집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외국으로 일을 나가기 전 아들에게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 아빠. 가부장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한국남자들이 많이 들었던 이야기기도 한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이 울지도 못하고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킬 게 많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들. 설경구 선배가 마지막에야 울음을 터뜨린 건, 울 곳만 있으면 울어도 되지 않을까란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음악이 강조하지도 않고 울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절제됐는데.
▶창작하는 분들은 뭔가를 하고 싶은 법일텐데, 그걸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절제하길 바랐다.
-엔딩 크레딧 자막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세월호 희생자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유가족, 참사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라고 썼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생일'은 감독 뿐 아니라 제작한 사람, 투자한 사람,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용기를 낸 영화인데. 배우도 바뀌고, 투자사도 바뀌고, 만들기 전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단단히 했나. 또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로서 그의 영화 속 윤리에 영향을 받았나.
▶영화를 전공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고 뭘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부로 들어갔다.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영화를 만드는 방법과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제 입장의 윤리를 담은 게 아니다. 그런 걸 담지 않으려 한 게 내 윤리라면 윤리였을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이창동 감독님과 제작자인 이준동 대표님을 찾아갔다. 작게 하든, 크게 하든 꼭 만들겠다고 하셨다. 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다.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동요되지 않았다. 촬영에 들어가서는 너무 집중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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