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큰롤 뮤지컬인데 흥겹지 않다. 흥을 쫓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을 갈구하던 엘튼 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엘튼 존의 노래가 춤과 함께 수놓지만, '로켓맨'(감독 덱스터 플레처)은 사랑 찾아 방황하던 어느 작은 소년의 이야기다.
살아있는 전설이자 팝의 아이콘. 전세계 3억 5000만장 앨범 판매, 80개국 3500회 공연, 그래미 어워즈 5회 수상. 엘튼 존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들이다. '로켓맨'은 이 수식들 아래 가려진 엘튼 존의 삶을 살폈다.
영국의 어느 작은 마을.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던 소년 레지널드 드와이트. 소년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아버지는 포옹은커녕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다. 어머니는 넘치는 사랑을 다른 이에게서 구했다. 오직 외할머니만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사랑을 느끼게 해줬다.
로큰롤에 눈을 뜬 레지널드는, 밴드 활동을 하다가 엘튼 존으로 개명한다. 과거의 자신과 이별하기 위해서다. 데뷔를 준비하다 평생 벗이며 그의 노래들을 작사한 버니 토핀을 만난다. 그렇게 엘튼 존의 전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의 외로움은 점점 더 커진다. 게이란 성정체성을 깨닫지만 그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가온 남자는 그의 돈을 원할 뿐. 커밍아웃하는 순간 어머니에게 평생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란 소리를 듣고만 엘튼 존은, 점점 더 술과 마약과 섹스에 빠져든다. 유전으로 대머리가 될 것이란 소리를 들은 탓인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던 탓인지, 그의 의상과 무대는 갈수록 화려해진다. 인기는 절정으로 달리지만 외로움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로켓맨'은 여느 록스타의 전기 영화와 큰 얼개는 다를 바 없다. 수줍은 천재 소년이 화려한 비상을 시작하지만 외로움에 허덕이고 나락에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로켓맨'은 그 과정을 엘튼 존의 대표곡인 'Rocket Man' 'Crocodile Rock'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등과 함께 다양한 뮤지컬신으로 이끈다. 소년의 수줍은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의 외로움과 아픔을 파고드는 터라, 군무와 노래는 흥겹지 않다. 처연하고 슬프다.
실제 동성 연인과 결혼한 엘튼 존의 사랑을 그리는 터라, 동성애 묘사는 적나라하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그건 '로켓맨'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목말라 하고 사랑에 괴로워하는 엘튼 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주된 테마인 터라, '로켓맨'은 엘튼 존의 노래와 공연 묘사가 주는 에너지는 덜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교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절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보헤미안 랩소디'와 '로켓맨'은 다르다. '로켓맨'은 사랑을 찾아 헤매고 그리하여 다른 자신을 꾸몄던 엘튼 존이 진짜 자신을 인정하고 만나는 이야기인 터다. 그렇기에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공연이 주는 압도적 흥을 기대하는 관객들이라면 '로켓맨'은 불발에 그친 로켓일 터다. 엘튼 존의 사랑과 아픔에 공감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퀴어 뮤지컬 무비는 영화적인 설득을 갖는다. 다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다 보니 동성애에 탐닉하게 됐다는 '로켓맨'의 전개는 다분히 작위적이다.
엘튼 존 역을 맡은 태런 에저튼은 좋다. 노래와 춤, 감성과 드라마를 훌륭히 이끈다. 벌써부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유력하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로켓맨'은 '보헤미안 랩소디'에 비해 더 영화적이다. 대신 살아있는 전설을 그린 터라 죽음으로 신화가 완성된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덜 극적이다. 그 차이가 흥행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
6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터라 동성애 묘사 수위가 높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