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달, 부산 배경, 누아르 장르. 세 단어만 보아도 어떤 이야기일지 예상된다. 그러나 '퍼펙트맨'(감독 용수)은 진부한 소재일지라도, 용수 감독의 경험에서 나온 정서를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냈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던 이가 자신의 정서를 담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영화 '퍼펙트맨'을 통해 첫 연출에 도전한 용수 감독을 스타뉴스가 만났다. '퍼펙트맨'은 까칠한 로펌 대표 장수(설경구 분)와 철없는 꼴통 건달 영기(조진웅 분)가 사망보험금을 걸고 벌이는 인생 반전 코미디다.
-영화를 연출하기 전에 웹툰을 그렸다고 들었다. 웹툰은 어떻게 시작했나.
▶ 군 제대 하루 전날 사고로 오른팔과 오른 다리 마비를 겪었다. 1년간 병원을 왔다갔다하면서 집에만 있었다. 디자이너인 형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활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개발새발 그렸던 그림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아져서 사이트를 만들어 소통을 시작했다. 돈이 꽤 됐다. (웃음) 몸도 불편하니까 웹툰을 그리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그렸던 그림들이 '누구한테 상처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림을 못 그리겠더라. 정말 하루아침에 이유 없이 사이트를 닫았다. 퍼져있는 그림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흑역사라고 생각하기에 웹툰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움이 된 게 있기에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표현한다.
-웹툰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그 뒤에는 무엇을 했나. 또 영화 '퍼펙트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웹툰을 그만두고 음악을 했었다. 무대에 설 수는 없지만, 재활하면서 끝까지 음악을 하려고 했었다. 벨소리 납품하는 사업도 하고, 쇼핑몰도 했었다. 쇼핑몰 같은 경우에는 정말 잘 됐다. 그러다 쇼핑몰이 정말 심하게 망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겼다. 돈을 갚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는데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하게 됐다. 1등에게 주어지는 상금이 5000만 원, 2등은 3000만 원이었다. 이 정도면 급한 불 끌 수 있겠다 싶었다. 시나리오를 모르니까 찾아보고 보름 정도 잠을 안 자고 시나리오를 썼다. 운이 좋아 당선이 됐고, 상금을 받아 급한 불은 껐다. 지금의 아내이자 당시의 여자친구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보라고 했다. 한 영화사에 들어가 10년간 일을 했다. 다른 작품 각색도 해보고, 중국으로 날아가 글도 썼다. 그런데 영화가 계속 엎어졌다. 그 일을 끝까지 책임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땅에 헤딩 식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고 시작해서 하게 된 게 '퍼펙트맨'이다.

-'퍼펙트맨'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
▶ '퍼펙트맨' 전에 다른 이야기를 연출하고 글을 썼다. '퍼펙트맨'과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 투자가 안됐다. 그래서 제게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생각해 오던 정서가 있었다. 아파서 누워있을 때 했던 생각과 제 고향이 부산이기에 부산에서 느꼈던 정서를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 생활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퍼펙트맨'도 살아온 경험에서 딱 하나가 나온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다. 장수 캐릭터는 저의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실 때 수트를 차려입은 어르신을 보면서 정립됐다. 영기 캐릭터는 제가 누아르 영화를 좋아했다. 누아르 장르에서 가진 캐릭터는 결핍으로 인한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정서를 유쾌하고 재밌게 풀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부산이 배경인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의 전성시대'(감독 윤종빈), '친구'(감독 곽경택)등 이 흥행 했기에 의도한 건가.
▶ 부산은 제 고향이긴 하지만 가기만 해도 설렌다. 묘한 정서가 있는 도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때면 가서 취하고 싶기도 하다. 어느 동네를 가면 미래 도시 같고, 어느 동네를 가면 소담하지만 우리가 사는 동네 같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볼 수 있는 도시 같다. 장수와 영기는 과거에 얽매여 있고, 미래에 집착하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를 정서적으로 풀어내기에 최적이었다. 제가 서울 사람이라면 흥행을 염두하고 부산을 배경으로 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저는 고향이 부산이기에 부산에 대한 애정이 있다. 흥행하면 좋은 거다 (웃음)
-설경구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 흑역사라고 표현했지만 그림 덕분에 설경구 선배님을 캐스팅한 것 같다. 설경구 선배님과 미팅을 했을 때 제가 생각하는 장수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리포트로 준비했다. 어려운 콘티도 몇개 그려서 보여드렸다. 저는 설경구 선배님을 꼭 잡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모든 능력을 끌어야 했다. 설경구 선배님이 앉자마자 말도 안 하시고 30분 동안 제가 준비한 리포트를 보셨다. '준비를 열심히 했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제게 '왜 날 캐스팅하려고 하냐'고 물으시더라. 그때 제가 '잘생겨서요'라고 답했다. 팬들을 의식한 건 아니다. 영화를 하기 전부터 '누구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저는 '설경구 선배님'이라고 항상 말했다. 제게는 우상 같은 분이었다. 스케줄 때문에 함께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감독 변성현)가 미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때다' 하고 보름 동안 잠을 안 자고 다시 자료를 준비해 미팅을 했었다. 그때 설경구 선배님이 '이거 할게'라고 말하지 않고 '언제부터 준비하면 돼?'라고 하셨다. 현재 웹툰을 그리지 않는 것에 대해 미련은 없다. 설경구 선배님을 캐스팅 했기 때문에. (웃음)

-그렇다면 조진웅은 사투리 연기를 염두해 두고 캐스팅을 한건가. 조진웅은 건달 미화로 인해 처음에 거절한 걸로 아는데.
▶조진웅 선배님이 '퍼펙트맨'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 '부산 건달 얘기야'라고 하면 거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읽는다면 분명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미팅을 했을 때 궁금한 게 없으시다고 해서 저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든 시나리오를 읽게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서 하와이 일정차 나가실 때 손에 들려줬다. 비행기 안에서 보시고 하와이 도착하자마자 제게 '하고 싶다'며 전화를 주셨다.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 모르겠지만, '퍼펙트맨'과 영기라는 캐릭터가 가진 정서가 조진웅 선배님께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기 역할에 조진웅 선배님은 대체 불가였다. 대국(진선규)과 난다리(지승현)도 무조건 네이티브여야 했다. 사투리에는 정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조진웅, 설경구와 함께 작업을 한 소감은? 앞서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면 종교 같이 신앙심이 들었다고 했는데.
▶저는 두 선배님들의 연기를 가장 먼저 모니터로 본다. 두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한 마디로 '미쳤다'고 해야하나. 사실 시나리오는 가이드다. 시나리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배우 고유의 역할이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을 보여주셨다. 시나리오에 있지 않는 감정이 연결되면 다음 컷은 못 쓰게 된다. 고쳐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님들이 만들어낸 장면을 지키기 위해 매일 매일 시나리오를 고쳤다. 선배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단 한 번도 시나리오의 방향과 엇나가는 연기를 하시지 않았다. 그 안에서 새롭고 감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연기력을 보고 신앙심이 생겼다. (웃음)
-조진웅, 설경구의 연기를 보고 신앙심이 생겼다고 했지만, 작업이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한데.
▶ 두 분의 배우를 모셔놓고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연출적으로 '다 보여줄꺼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완성된 연기력을 겸비하신 분들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게 제 역할이었다.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게끔 판을 깔아주는 것에 대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정말 잘 놀아주셨다. 조진웅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크가 좋다. 반면 설경구 선배님은 세 번째, 네 번째 갈수록 무엇인가가 나오는 케이스다. 두 분이 붙었을 때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다. 두 분의 연기 호흡에 대한 조율이 촬영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함께 작업 하면서 매일 매일 즐거웠다. (웃음)

-조진웅의 의상 콘셉트가 화려하다. 조진웅 말로는 용수 감독 소장의 옷도 입었다고 하던데.
▶영기 캐릭터는 현실을 바로 못 보는 캐릭터다. 헛된 이상만 쫓는다. 주식에 손을 대고, 코인도 하려고 하기에 의상도 비현실적인 게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의상 실장님께 '그 누구도 입지 않을 것 같은 값비싼 명품 옷'을 주문했다. 의상 실장님이 가지고 온 의상을 보니 정말 휘황찬란 했다. 처음에 조진웅 선배님이 피팅하러 왔을 때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태어나서 이런 의상은 처음 본다고 하셨다. 화려한 옷을 입으면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조진웅 선배님이 영기 캐릭터에 동화되는 과정이었다. 조진웅 선배님은 평소 묵묵하시지만, 영기의 옷을 입을 때면 춤을 추게 되고 브루노 마스의 곡 '업타운 펑크'를 계속 들으셨다. 계속 캐릭터에 젖어있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항상 감동이었다. 제 의상을 입게 된 것은 영기의 정서에 어울렸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화려한 느낌을 버려서는 안되는데 평이하게 입고 계시길래 숙소에 달려가서 제 옷을 가져와 입혔다. (웃음)
-극중 신파 설정에 대해 우려는 없는가. 원래 휴먼 장르로 시작했지만, 코미디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정서를 잘 밟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웃음이 터지는 장면을 다시 보면 무거운 장면이다. 울리기 위해 일부러 연출을 한 것은 아니다. 담백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장르를 정하지 않고 연출을 하려고 했었다. 보시는 분들에 따라 장르를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그저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편하게 볼 수 있고 선배님들의 보고싶은 모습을 담았다. '퍼펙트맨'을 통해 다른 색을 입혀드리고 싶었다.
-왜 영화 제목이 '퍼펙트맨'인가?
▶'퍼펙트맨' 안에서 아이러니하게 마지막까지 퍼펙트한 캐릭터가 없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영기는 퍼펙트하다고 한다. 상황이 완벽해서 퍼펙트한 게 아니라 그럼에도 삶을 바라 보는 영기의 자세가 관건이라 생각한다. '퍼펙트맨' 제목 역시 완벽함의 찬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위로라고 생각한다. 퍼펙트하다는 말에 제가 어떤 가치를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게 퍼펙트하다. 그런 의미로 '퍼펙트맨'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