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C코믹스 영화는 가끔 괴물 같은 작품이 튀어나온다. '조커'는 괴물이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는다.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광대로 분장해 거리에서 홍보를 해도, 돌아오는 건 불량 청소년들의 뭇매뿐. 사람들은 웃어주지 않는다. 거리는 폭동 직전이다. 사람들은 온통 화가 나 있다.
아서는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병에 걸린 어머니를 홀로 돌본다. 어머니는 30년 전 그 집에서 일했던 고담시의 대부호 토마스 웨인에게 늘 도와달라는 편지를 쓴다. 답 없는 편지를 쓴다. 토마스 웨인은 구제불능인 이 도시를 구하겠다며 시장 출마를 선언한다. 가진 자로서 비루한 못 가진 자를 정리하겠다며.
아서의 유일한 낙은, 어머니와 함께 생방송 토크쇼 '머레이 프랭클린쇼'를 보는 것뿐이다. 아서는 머레이(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TV쇼에 출연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걸 꿈꾼다. 아서는 머레이에게서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본다.
누구와도 말을 나누기가 힘든 아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그는 수시로 웃음을 터뜨린다. 슬플 때든, 기쁠 때든, 웃음을 터뜨린다. 어머니는 그를 "해피"라고 부르며 늘 웃으라고 말했다.
그저 "내 삶이 내 죽음보다 '가취' 있길 바라"는 아서는 어느 날 권총 한 자루를 얻는다. 탕, 탕. 갖고만 있어도 뭔가 달라지는 것 같은 그것. 권총은 아서에게 날카로운 손톱이 된다. 강인한 이빨이 된다. 그렇게 아서는 조커가 돼 간다.
'조커'는 DC코믹스 배트맨 시리즈의 메인 빌런인 조커의 탄생을 그린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슈퍼히어로 코믹스 영화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면,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고전영화들의 만신전에 안착시켰다. '코미디의 왕'을 꿈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탈출해 '브이 포 벤데타' 가면을 쓴 채 '택시 드라이버'의 택시를 모는 것 같다.
미쳤다. 세상은 온통 미쳤다. 돈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애도 받고, 돈 없는 사람들의 죽음은 없는 일이다. 가진 자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광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선다. 가진 자들에게 그 외침은 없는 것이다. 좋은 극장에서 좋은 옷을 입고 즐거운 영화를 만끽한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미친 줄 모른다. 스스로 미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미친 세상에서 멀쩡한 척 사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친 세상을 더욱 미치게, 광대로 더욱 즐기면서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를 분노하는 현대 사회의 우화로 만들었다. 트럼프에 열광하는, 전 세계 곳곳에 있을 다른 형태 일베들의 상징, 조커다. '조커'가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지만, 미국 주류 언론에서 이 영화에 우려의 목소리를 쏟는 이유다. 분노하라, 세상이 미쳤다면 너의 미친 짓도 당연하다. 열광하라,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조커'는 그렇게 외친다.
아서 플렉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는, 엄청나다. 탁한 웃음과 혼돈의 눈빛과 말라붙은 몸과 유려한 몸짓과 짙은 담배 연기로 조커를 완성했다. 멍든 등가죽마저 연기한다. 강렬하게 관객을 스크린으로 빨아들인다. '조커'에 동의하지 않아도 동화된다면, 호아킨 피닉스 덕이다.
'조커'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찰리 채플린의 말을 역설적으로 옮겼다. 비극인 인생을 희극으로 만들고 싶어서 스스로 광대가 된 남자 이야기다. 비밀이 있는 이야기지만 예상대로 흘러가고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다. 차가운 푸른 빛과 안온한 어둠을 오가는 촬영, 귀를 파고드는 현의 울림,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많은 질문과 많은 논란, 많은 답을 내놓게 할 문제작이다.
10월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IMAX로 보길 권한다. 작은 스크린으로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를 만끽하지 못할 듯.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