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선 시각,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영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수적인 프랑스 영화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영화 작품성을 볼 때는 감독의 범죄전력이나 윤리적인 상황을 개의치 않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배우는 비난하는 이상한 모습이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자르 영화제에서 아동 성범죄 혐의로 40년 넘게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87)이 감독상을 받아 논란이 됐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1977년 미국 LA의 한 집에서 13세 소녀에게 샴페인과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42일간 수감 됐다가 유죄 협상제도를 통해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로만 폴란스키는 징역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이야기에 선고 전날 프랑스로 도주했다. 이후 폴란스키 감독이 지금까지도 미국에 가지 못하고 40년 넘게 도피 중이다. 폴란스키 감독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파리에서 살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세자르상은 프랑스 영화인들의 모임인 영화예술아카데미가 주관하는 행사로 매년 최고의 프랑스 영화에 시상하는 프랑스 영화계의 축제다. 이번 세자르 영화제 후보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후보로 오르자 시상식 보이콧 움직임까지 생겼지만 영화제 조직위는 "후보자 선정에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 윤리적인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밝혀 비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프랑스 영화 아카데미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영화인들이 공개 서한을 발표했고, 영화제 위원회 21명이 사임하기도 했다. 시상식 당일 극장 밖에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규탄하는 시위도 열렸다. 시위대 중 과격한 무리가 시상식장 진입을 시도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등 충돌도 생겼지만, 정작 로만 폴란스키 감독 본인은 이날 충돌이 무서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 성범죄 전력이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프랑스 영화인들이 주는 감독상을 받았지만, 이에 대해 항의 목소리를 낸 배우 아델 에넬에게 이상한 비난을 쏟아졌다.
세자르상을 2차례 수상한 배우 아델 에넬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올해 세자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이름이 감독상으로 호명되자 아델 에넬은 시상식장을 나가며 항의의 표시를 했다. 아델 에넬은 최근 자신이 12살에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 감독이었던 루지아 감독이 자신을 성추행 했다며 '미투' 폭로를 했다. 아델 에넬은 이후 인터뷰를 통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이름이 호명되자 뒤에 있던 누군가가 '폴란스키 만세'라고 외쳐서 참을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아델 에넬의 용기있는 행동에 전세계 영화인들과 팬들의 응원이 쏟아졌지만 유독 프랑스에선 그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유명 영화 캐스팅 디렉터는 자신의 SNS에 아델 에넬의 항의 퇴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아마 아델 에넬은 곧 배우로서 끝장 날 것 같다. 아델 에넬의 연기력은 폴란스키의 연출력에 비할 것도 없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해당 글과 더불어 욕설까지 했다가 논란이 되자 결국 글을 삭제했다.
'하이 라이프'등을 연출한 프랑스 유명 감독 클레어 드니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에넬이 세자르 시상식 중 갑자기 일어나서 나간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아델 에넬이 우리를 향해 '부끄러운 줄아라'라고 외친 것은 이상하다. 사람들은 좋은 작품에 투표했다. 폴란스키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한 것인데.(왜 부끄러워해야 하나)이것이 세자르 영화제다"라고 말했다.
성범죄 전력이 있더라도, 연출력이 뛰어난 감독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여배우에게는 날선 분위기를 드러낸다. 개방적인듯 하지만 보수적인 프랑스 영화계의 민낯이라는 반응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 매체 미디어 파아트는 "올리비에 카르본이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여성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여성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런 생각을 숨길 줄도 모른다"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에서 활발한 미투 운동이 프랑스에서 주춤한 건 이 같은 표리부동한 업계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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