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비상선언'이 항공 재난이라는 초유의 재난 속에 놓인 현실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선보였다.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행공포증이 있는 재혁(이병헌 분)은 딸의 심한 아토피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향한다. 하와이서 일자리도 얻고 딸이 좋은 공기를 마시며 지낼 수 있게 해주기 위해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비행기에는 '아무데나 사람이 많이 탄 비행기'를 타려고 했던 류진석(임시완 분)도 탔다. 재혁은 공항에서 자신과 딸에게 시비를 걸던 진석이 비행기를 탄 것이 찝찝하다. 그때 형사팀장 인호는 한 남자가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비행기 테러 영상을 보고 직접 탐문 수사를 나간다. 그 남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에게 제보 받은 인호는, 장난일 것이라는 후배 형사들의 만류에도 영상을 올린 남자의 집을 직접 찾아간다. 남자의 집 문이 열려있고, 그 집안에 들어간 인호는 집 안에서 바이러스로 인해 죽은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비행기 테러 예고가 사실임을 알게 된 인호는, 테러범이 하와이행 비행기만은 타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진석의 행선지가 호놀룰루임을 확인하고 놀란다. 그 비행기에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인호의 아내도 타고 있었다. 결국 비행기는 이륙했고, 상공에 갇힌 비행기에서 테러범 진석의 폭주가 시작 된다.
'비상선언'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항공 재난을 소재로 긴박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18000피트 상공 위, 좁은 비행기에 갇힌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고, 살아남기 위해 힘을 합치고, 또 갈등하고, 결국 마음을 모으는 모습이 긴장감을 전한다. 기존의 할리우드 항공 재난 영화들이 총기 등의 무기나 하이재킹 같은 이야기를 펼쳐낸 것과 달리 '비상선언'은 생화학 테러를 소재로 해서 좁고 밀폐된 비행기 안에 바이러스가 번져 사람들이 재난에 빠지는 상황을 그렸다. 다소 낯선 바이러스 테러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우리들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아이러니한 공감을 전한다.
한재림 감독은 재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자극적이고 강한 이미지 대신, 재난에 처한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악랄한 빌런과 재난 속 튀어나오는 히어로를 만들어내기 보다 현실적으로 있을법한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부터 가족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차근차근하게 그려냈다.
송강호는 형사 팀장이자 비행기에 탄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인호는 영화 말미 재난의 마지막 해결책을 제시하며, 히어로보다 숭고한 가족의 사랑과 희생을 그려냈다. 송강호는 자신만의 연기톤으로 인호를 표현해 내며 영화에 리얼리티를 살려냈다. 이병헌 역시 딸을 지키는 재혁을 연기하며 하늘 위 비행기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병헌은 부성애를 보여주면서도 재난 속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재혁을 잘 표현해 냈다. 김소진은 승무원 사무장 역할로, 김남길은 부조종사 역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해낸다. 아주 뛰어난 영웅은 없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재난을 극복하는 힘을 쌓는다. 지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도연은 국토부 장관으로, 박해준은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나와 각각의 의견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가 가진 고유의 힘으로 캐릭터를 세우며 영화를 끌고 나가지만, 배우가 가진 매력이나 연기력을 담기에 캐릭터의 그릇이 작다. 임시완은 새로운 발견이다. 선한 얼굴에서 광기가 뿜어져 나온다. 당위성 없는 류진석이라는 캐릭터를 연기로서 설득시킨다.
'비상선언'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르기 보다, 한재림 감독이 생각한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뚝심 있게 밀고 간다. 이 시도는 영화의 양날의 검이 될 것 같다. 초 중반 몰아치며 새로운 재난영화의 탄생에 열광하게 되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다보니 힘이 떨어진다. 초대형 비행기를 직접 들여와서 만든 비행기 세트장에서 그려낸 항공 액션은 영화의 장점이다. 비행기 조종신에서는 관객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유래없는 대규모 항공 재난 영화, 그 속에서 만나는 우리의 현실 같은 재난. 새로운 볼거리와 이야기를 담은 '비상선언'이 올 여름 극장을 찾은 천만 관객과 함께 착륙 수 있을지 주목 된다.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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