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하이라이트, 인피니트, 씨스타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늘 따라붙은 별명은 바로 '중소의 기적'이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 기업에서 한 시대를 풍미할만한 히트곡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역주행 신화로 주목받은 그룹 EXID, 브레이브걸스 역시 '중소의 기적'에 속한다. 그러나 한동안 조용했던 가요계가 또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중소의 기적'이 탄생했다.
하이키(서이, 리이나, 휘서, 옐)는 지난해 1월 싱글 1집 '애슬레틱 걸'(ATHLETIC GIRL)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해당 앨범은 입체적인 사운드와 절제미가 돋보이는 힙합 장르로, 내면의 강인함을 추구하는 팀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다수 힙합 뮤지션과 함께 작업한 피제이도 참여하며 하이키는 강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멤버 시탈라의 탈퇴 후, 재정비한 하이키는 맥시 싱글 앨범 '런'(RUN)을 발표했다. '런'은 밝은 운동 콘셉트를 보였다. 이는 마치 청량하고 밝은 이미지를 추구한 하이키는 신인 걸그룹의 표본과 같았다.
하이키는 다음 앨범에서 곧바로 변신을 꾀했다. 올해 1월 발매된 첫 번째 미니 앨범 '로즈 블러썸'(Rose Blossom)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피어나려는 이들에게 바치는 앨범이다. 타이틀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이하 '건사피장')는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하이키가 이번 앨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된 곡이다. 차갑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품고 있는 희망과 꿈을 장미에 비유했으며, 결코 꺾이거나 시들지 않고 아름답게 활짝 피우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데이식스(DAY6)의 영케이(Young K)가 작사를 맡았으며, 홍지상 작가가 작편곡에 참여하였다.
'건사피장'은 요즘 음악에 비해 여유롭고 비어있는 구석들이 많다. 1절, 2절, 후렴구가 정확하며 빠르지 않고 귀에 잘 들어온다. 이런 특징은 주로 2000년대 음악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트렌드를 쫓지 않고 만들어진 '건사피장'은 독보적인 느낌으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은 것이다.

음악적 요소 외에도 가사 특징 역시 독특하다. 최근 K팝 시장 음악은 영어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간혹 이해하지 못할 단어도 속해 있다. 그런데 '건사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서사가 있다. 건물 사이에서 피어난 장미가 삭막한 도시 위를 뒤덮길 바라고 온몸을 두른 가시 속에서도 굴하지 않길 바란다. 또 벌레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자신의 향기가 퍼지길 원한다. 세대 구분 없이 남녀노소 이해할 수 있는 가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듣는 이와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이런 지점들은 대중의 마음을 확실하게 저격했다. 최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멜론, 벅스, 지니 등 각종 음원사이트 톱100 안에 진입했다. 국내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 한터차트가 제공하는 '리얼-타임 한터 차트'(Real-time Hanteo Chart)의 '피지컬 앨범 차트'(Physical Album Chart) 부문에서 초동(발매일 기준 일주일 동안의 음반 판매량)이 아닌 발매 6주 차에 이례적으로 1위를 하며 자체 최고 기록 경신했다. 특히 하이키는 영상 매체가 아닌, 음악의 힘으로서 역주행한 기록이기에 더욱 유의미하다.
신인 걸그룹의 역주행은 꽤 오랜만이다. 최근 역주행 곡만 봐도 브레이브 걸스, 윤하처럼 경력이 오래된 가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K팝 시장에도 새바람이 불어왔다. 앞으로 하이키가 K팝 음원 시장에 어떤 장미를 피워낼지 주목된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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