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제69회 그래미어워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통해 한국 가수의 수상이 이뤄질 수 있을까. 만약 수상한다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그래미어워드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 6월 새로운 개편 사항을 통해 내년 2월 열리는 제69회 그래미어워드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베스트 라틴 송, 베스트 트래디셔널 팝 보컬 퍼포먼스, 베스트 R&B 컬래버레이션 또는 듀오/그룹 퍼포먼스, 베스트 트래디셔널 포크 앨범 등 5개 부문을 새롭게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팬들 입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다. 이에 레코딩 아카데미가 공식 규정집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은 K팝, J팝, C팝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시장에서 유래했거나 널리 알려진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의 예술적 우수성을 인정하는 부문으로,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일단 우리 입장에서는 크게 나쁠 게 없어 보이는 변화다. 그간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져오면서도 굳건하게 뚫리지 않았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어워드가 어느 정도 한발 물러서서 수상의 기회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볼 수 있겠다.
그래미어워드는 전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미국 음반 업계 최고 권위 시상식.
그동안 여러 K팝 아티스트들이 그래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아직까지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K팝과 그래미의 첫 접점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베스트 뮤직비디오 후보에 오르며 K팝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방탄소년단이 제63회부터 제65회까지 3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연속으로 올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실 빌보드 뮤직어워드와 아메리칸 뮤직어워드의 경우 글로벌 팝 시장의 변화를 상당 부분 수용해나가면서 K팝 아티스트들의 다수 수상과 퍼포머 참석의 빈도가 많아지고 있었다. 그래미어워드는 이 두 시상식에 비해 보수적인 측면으로 집계와 수상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지난 68회 시상식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이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리고 블랙핑크 로제와 캣츠아이도 장르 부문 상이 아닌 본상 후보에 오르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K팝의 위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번 부문 추가가 의미하는 맹점과 불편한 진실도 숨어 있기도 하다.
먼저 레코딩 아카데미가 규정한 '아시안 팝'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의 소지다. K팝, J팝, C팝을 굳이 언급하며 인도 힙합, 펀자브 힙합, 발리우드 팝 등을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이 있고, 설사 이 장르들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스타일도 문화도 확연히 다른데 오로지 그래미어워드만의 시각으로 이 장르들을 '아시안 팝'으로 통칭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와 관련, 롤링스톤스 인디아는 "이 부문이 아시안 팝의 인지도는 높일 수 있지만 그저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도 있고 아시안 팝으로의 의미 있는 통합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라며 "K팝 또는 J팝 아티스트를 선택함으로써 유입될 막대한 스트리밍 트래픽으로 재정적 이익은 얻겠지만 되려 수상 자체의 권위는 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앞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어반, 라틴 장르 부문 상을 신설할 때와 다르지 않다"라고 전했다.
포브스도 이에 대해 "이 부문에 대해 언급한 세부 장르는 고작 K팝, J팝, C팝 뿐이며 역시 규모가 큰 시장인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음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라며 "힌디어 영화 음악, 타밀어 포크팝, 인도네시아 당둣, 페르시아 고전 음악과 힙합 크로스오버, 펀자브 힙합 등이 모두 아시아에서 유래했고 아시아 언어를 사용하지만 현재 그래미어워드의 핵심 정의에 딱 들어맞는 음악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경우'라는 노미네이트 조건도 의외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아시안 팝'이 갖고 있는 의미와 취지에 맞는 부분일 수도 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영어로만 가사가 채워진 K팝 노래는 이 부문에 후보로 올라올 수 없게 된다는 것.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의 'Dynamite'나 'Butter'의 경우 100% 영어 가사로 돼 있기에 이 부문 후보가 될 수 없다. 또한 영어 가사를 주로 쓰는 아시아계 가수 입장에서도 불리해진다.
이와 함께 포브스는 "만약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상을 수상했음에도 올해의 레코드나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르지 못한다면 이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아시안 팝의 상업적 지배력은 인정하면서도 주요 경쟁 부문에 통합시키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라고도 전했다.
팬덤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확장해온 K팝에 대해 그래미도 이제는 '아시안 팝'으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거대 로컬 장르로서 인정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게 계속해서 느껴지고 있다. 다만 K팝이 말하는 진짜 정체성에 대해 그래미에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도 아직 남아 있다. 이 과제를 풀어야 K팝도 배드 버니처럼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아티스트를 배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한편 내년 2월 7일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리는 제69회 그래미어워드 후보 자격은 2025년 8월 31일부터 2026년 8월 28일 사이에 발매된 음반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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