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대표적 예술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니나가와 유키오가 정극으로 연출한 작품을 만났다.
일본연극 그것도 정극이라 국내에서 별다른 호응이 없을 거라 섣부른 판단을 했던 나는 마지막 날 공연을 예약을 하려다가 깜짝 놀랬다.
전석 매진이란다.
설마 일본뮤지컬도 아닌 정극을 그것도 3시간 이상이나 봐야 되는 정극의 지루함을 감수하고 전석 매진을? (이건 분명 90년대 핫 아이돌 미야자와 리에를 보려는 한국 남성 팬들의 야심?)
나 역시 90년대 초 일본유학 당시 리에는 방송에서, 무라카미는 출판계에서, 유키오 감독은 연극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스타였기에 이들이 같이한 무대를 꼭 보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던 터라 어렵사리 표를 구해 그들을 만나러 갔다.
무라카미는 체코 출신의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를 오마주 해 '해변의 카프카'를 발표했다. 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성'을 만난 지 40년이 지난 2002년의 일이었다. 해변의 카프카는 도서관을 무대로 한 소설이다. 무라카미에게 도서관은 '저편'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아내는 장소이다. 그곳에는 미스터리, 공포, 기쁨이 있다. 그리고 그에게 도서관은 은유의 통로이자 상징의 창문이며, 우화가 숨겨진 찬장이기도 하다.
해변의 카프카를 연출한 니나가와 유키오는 일본 사이타마현 출신이다. 니나가와는 젊은 시절 미대 지망생이었으나 낙방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대낙방이 오히려 잘된 듯싶다) 그러던 중, 1955년 우연히 세이 하이 극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니나가와는 연기를 배우게 된다. 1967년 극작가 시미로 쿠니오와 현대인 극장을 창단했다. 2년 후, '진정이 넘치는 경박함'으로 연출로 데뷔하게 된다. 1972년에는 사쿠라샤를 창단하여 실험극에 몰두하며 사회성 짙은 작품을 공연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일본 연극계에 희극 감각 연극이 대두 되어 낮에는 영화관으로 운영되는 무대를 매일 밤마다 철거하고 설치를 반복하며 공연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소극장의 열악한 시스템에 니나가와는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깊은 절망감에 빠진 니나가와는 마침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대극장 연극의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된다. 그는 1974년에 토론 연극 부 나카네 타다오 프로듀서를 만나게 되고(이들의 만남이 일본연극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같은 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대극장에서 연출하는데 성공한다. 그의 성공 이후, 나카네 프로듀서는 1980년 초연된 '니나가와 맥베스'를 통해 연출가 니나가와를 브랜드화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니나가와는 1983년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왕녀 메디아'를 연출, 공연을 올렸다(이때 유키오는 그리스적 무대예술을 연구하고 탐닉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 공연에서는 남자 배우들에게 모든 배역을 할당해, 가부키를 뷰자데(일본 정통연극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재창조) 했다. 니나가와 연출의 대전제는 피곤한 현실을 잊고자 공연장을 찾는 이들을 위해 꿈과 같이 화려하고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연극이 시작된 후 3분 안에 극의 모든 메커니즘을 동원해서 관객들을 연극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한다(유키오의 오프닝 연출기법은 이후 모든 일본 공연계의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그는 서양의 고전들을 연극화하면서 벚꽃과 같은 익숙한 장치들을 활용하여 일본의 문화를 담은 특유의 무대 미를 살린다(그는 가장 일본적인 상징을 넣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철저히 계산된 음향 디자인과 조명 디자인으로 소리와 빛을 통해 정서의 기본 베이스를 잘 전달해 관객과의 공감대를 극대화한다.
니나가와의 해변의 카프카는 공연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하루키의 작품이 일본 연출가의 손으로 무대에 올려진 것은 니나가와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2013년 두산아트에서 국내 연출에 의해 올려졌다고는 하지만……).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시공간의 이동방식이다. 무대에서 시공간이 바뀔 때마다 투명 이동무대가 등장한다. 거대하고 투명한 3면아크릴 박스 안에 배우와 세트를 넣어 무대를 구성했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그와 동시에 검은 옷을 입은 스텝들이 에키클레마(이동 덧마루)를 옮긴다. 배우와 스텝, 연출이 이뤄낸 노력의 산물이다. 이 검은 옷을 입은 스텝들은 마치 사무라이 속 검은 닌자들과 같아 보인다(유키오는 장막 뒤에 사무라이였으며 쇼군이었다).
과거 니나가와는 해변의 카프카를 무대화할 당시, 무라카미 작가의 문체를 어떻게 구체화해 낼지가 커다란 과제였다. 이때 니나가와는 자신이 젊었을 때 간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지구의 역사를 재현한 모형을 큰 유리에 담아 전시해놓은 것을 생각했다. 유리 안에 놓인 지구의 역사를 보면서 역사를 전부 가둬놓고 보여주려는 어떤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해서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 결과 무대에서 세밀한 디테일은 유리 안에 넣어 보여주고, 장대한 내러티브는 유리 박스의 움직임으로 펼쳐내 표현했다.
이 아크릴 투명박스의 움직임은 고대 그리스 에키클레마의 뷰자데 같아 보인다. 현대적 슬라이딩 스테이지의 원형인 에키클레마는 기원전 4~5세기에 꽃을 피웠던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사용된 무대장치 중 하나이다. 죽음이나 잔인한 장면들은 무대 밖에서 이루어지고, 바퀴 달린 덧마루가 금지된 비가시적인 곳을 통하여 등장하는 것이다.
니나가와는 세트를 넣을 뿐만 아니라, 배우의 대사를 고려한 사운드까지 과학의 기술과 접목시켜 무대를 만든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모색을 통해 대극장 연출의 시대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여든이라는 나이의 니나가와가 세계적인 연출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대감독인 나로서 니나가와의 무대연출력은 큰 자극이 되었다.
유키오 그가 세계적 4대 연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일본문화재단의 적극적 후원과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사실 이번 작품도 그의 고향 사이타마현 문화재단이 전체 제작 지원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문화재단이 많이 벤치마킹해야 할 사례인듯싶다).
일본 유학을 했던 나는 오래전부터 기대했던 미야자와 리에를 보러 갔다가 오히려 니나가와 유키오의 연출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26개의 마법의 에키클레마가 펼친 정주의 판타지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토요일 마지막 공연 날, 리에가 눈물을 흘렸던 까닭은 편찮은 몸을 이끌고 자신을 최고의 무대에 서게 해준 유키오 연출의 고마움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애 처음으로 커튼콜에 등장한 스탭(닌자)들에게 기립박수를 진심으로 다시 한번 보낸다.

석현수 감독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전)NHK 엔터프라이즈 연출부
다큐멘터리 서울 연출
아테네 문화사절단 총연출
사) 최승희 춤 연구회 고문
강남문화재단 인사위원
현) 중앙대 평생교육원 공연제작학과 출강
저서) 무대예술인을 위한 지침서 THE STAFF
일본어작업의 정석
동경라면산보
먹는장사는 90% 소통(구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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