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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야설(野說)] 송승준의 메이저리그 도전과 좌절

[장윤호의 야설(野說)] 송승준의 메이저리그 도전과 좌절

발행 :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마이너리그 시절의 송승준. /AFPBBNews=뉴스1
마이너리그 시절의 송승준. /AFPBBNews=뉴스1


2007년 3월23일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해까지 미국프로야구 캔자스시티 로얄스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우완 정통파 투수 송승준(27)과 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그렇게 송승준은 끝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고향 팀 롯데로 돌아와 꿋꿋하게 선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나이도 벌써 35세가 됐다. 송승준은 '제2의 박찬호'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에 그의 실패는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에게도 충격이었다. 다음은 당시 송승준에 대한 스티브 김의 평가이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에서 뛰었던 송승준은 내가 대표로 있는 KSI에서 관리하는 선수여서 평가 자체에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많은 한국 선수들 가운데 박찬호만큼 성공할 수 있는 투수로 주저 없이 송승준을 꼽는다. 송승준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보여준 여러 모습들에 근거한 것이다. 송승준의 사례가 모든 선수들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기에 소개해 본다.


첫째, 송승준은 성공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 미국 진출 초기에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혼자 외톨이로 지내지 않고 손짓 발짓으로 선수 코치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었다. 원정 경기에 나서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그 곳의 우리 동포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어려움이 생길 경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메이저리거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상대로부터 배울 것을 꼭 배우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원정 경기를 가면 10시간 이상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장거리 이동 때 송승준은 좁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올까 봐 다른 선수들에게 조금 불편을 주더라도 통로에 수건을 깔고 누워 있기도 한다.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도 무시할 수 있는 배짱도 갖추고 있다.


둘째, 송승준은 승부를 할 줄 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해운대의 겨울바람에 단련돼 있어서인지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유난히 지는 것을 싫어한다. 보스턴 레드삭스 싱글 A 시절 팀에 일본 프로야구 출신 일본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는 한국 선수들에게 유난히 심하게 장난을 치고 무시하거나 놀리는 행동을 했다. 그래서 송승준은 그를 불러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수가 계속 그런 행동을 하자 송승준은 그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 두들겨 패줬고 그 후 그 선수는 한국 선수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싸움을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항상 정면으로 승부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마운드에서도 잘 나타나 타자와의 승부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맞붙는다. 투수들의 척도인 볼넷과 삼진의 수치를 보면 2003년까지 4년간 마이너리그 성적에서 스트라이크 494개와 볼넷 170개를 기록했다. 대비해보면 스트라이크 3:1 볼넷의 비율이다. 여기서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타자들과 정면 승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이다.


마지막으로 송승준은 마이너리그 모든 단계를 경험하며 시련 하나 하나를 극복해가면서 단계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송승준은 박찬호와 같은 강속구 투수도 아니고, 김병현처럼 변화가 심하고 까다로운 구질의 공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시속 145km에서 153km를 오가는 수준급의 직구와 낙차 큰 커브, 그리고 직구의 궤도로 날아오다가 떨어지는 체인지업 등 3개의 구질을 어떤 상황에서도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을 갖춘 투수이다. 그의 스트라이크:볼넷 비율이 3:1이라는 것에서도 제구력을 짐작할 수 있다.


송승준은 처음부터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는 아니었다. 경남고를 졸업하고 18세의 나이에 보스턴 구단과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첫해인 1999시즌 루키리그에서부터 미국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2년째에는 로 싱글A(Low Single A)에서 직구 스피드 향상과 제구력을 위해 1년 동안 변화구를 거의 던지지 않고 직구 위주의 투구로 한 시즌을 보냈다. 3년 째 하이 싱글 A(High Single A)에 이르러서야 직구를 시속 145km 이상의 속도로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송승준이 변화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더블 A에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 위한 수업에 들어갔다. 전반기에는 커브를, 후반기 들어서 체인지업을 주로 던지며 2개의 구질을 익혔다. 볼카운트 1스트라이크 3볼의 불리한 상황에서도 변화구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2003년에는 트리플 A로 올라가 메이저리그 진입 직전 단계를 밟았다. 볼배합도 메이저리그 스타일로 직구 70%, 커브 15%, 체인지업 15%로 구성해 시즌을 마무리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일단 마친 것이다.


송승준은 이에 앞서 3년 연속 미래의 메이저리그 올스타 후보들의 무대인 퓨처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3년 더블 A 해리스버그에서는 팀 사상 처음이자, 미국 진출 한국 선수 최초로 노히트 게임(No-Hitter)을 펼쳤다. 그는 메이저리그 행을 가장 완벽하게 준비한 선수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보장된 것이 없는 정글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3년 몬트리올 산하 트리플A 팀인 에드먼튼 트랩퍼스까지 올라갔던 송승준은 2005년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 팀인 프레스노에서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마지막까지 기회가 오지 않았다. 에이전트로서 아직까지 의문과 함께 안타까움이 컸던 선수가 송승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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