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현지시간) 세계 랭킹 1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의 남자 단식 우승으로 막을 내린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이는 윔블던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대회라는 유구한 역사에서 출발한다. 윔블던 대회는 지금으로부터 148년 전인 1877년에 시작됐다. 세계 1·2차 대전이 벌어진 10년(1915~18년, 1940~45년)동안 대회가 열리지 않아 2025 윔블던 대회는 138회였다.
테니스를 대가로 돈을 받지 않는 아마추어 선수들만이 출전할 수 있었던 윔블던은 1968년 프로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했다. 기량이 뛰어난 프로 선수들 없이 많은 입장 수입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윔블던은 최대한 아마추어리즘의 전통을 지키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클린 코트 철학'이다. 이는 코트 내에 상업 광고를 되도록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녹색 잔디 위에서 펼쳐지는 테니스 경기에 관중들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숨어 있었다.
윔블던의 클린 코트 철학은 코트 사이드는 물론 네트와 코트 바닥에 후원 기업들의 광고가 즐비한 다른 그랜드슬램 테니스 대회(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윔블던은 상업적 수입을 확대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윔블던 대회의 기업 후원금은 2024년 기준 연간 약 1701억 원으로 그랜드 슬램 대회 가운데 가장 많다. 그렇다면 사실상 경기장에 후원사 광고가 없는 윔블던 대회는 어떻게 이렇게 큰 스폰서십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윔블던 대회의 주요 경기가 펼쳐지는 센터 코트에서 후원사의 이름이나 로고를 찾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에 가깝다. 설령 후원 기업의 이름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 크기가 매우 작다. 광고의 미디어 노출이란 측면에서 기업의 후원 효과가 그리 높지 않은 셈이다.
윔블던 센터 코트에서 찾을 수 있는 대부분 후원 기업의 광고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간과 스코어가 표시되는 스코어 보드 중앙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롤렉스의 로고와 이름이 나타난다. 또한 선수들의 서브 속도를 게시하는 계기판에는 후원사 IBM의 이름이 보인다.

주심이 앉아 있는 엄파이어 체어(Umpire's Chair) 부근에는 선수들을 위해 에비앙 생수가 마련돼 있다. 주심과 볼보이, 볼걸은 윔블던 후원사인 랄프 로렌 폴로의 셔츠를 입는다.
물론 이런 광고와는 달리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후원사의 코트 광고도 있다. 자동차 회사 레인지 로버, 항공사 에미리츠와 엄파이어 체어에서 회사 로고를 찾을 수 있는 바클레이스 은행 광고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바클레이스 은행은 17개 윔블던 후원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후원금을 제공한다. 바클레이스 은행이 내는 연간 대회 후원금은 약 32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장에서 광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윔블던 대회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브랜드도 있다. 스포츠 대회 역사상 가장 오래된 후원사이자 용품 제공업체로 알려진 슬레진저가 그 주인공이다. 1902년부터 윔블던 대회에 공을 제공한 슬레진저는 잔디 코트에 특화된 테니스 공 제작에 성공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코트에 비가 오거나 습기가 발생하면 그 수분을 공이 흡수할 수밖에 없다. 물기를 흡수한 공은 잔디 위에서 예측하기 힘든 바운스를 만들고 공중에서 이상한 궤적으로 움직인다. 이런 변수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슬레진저는 다른 테니스 공보다 70% 이상 수분을 머금지 않는 공을 개발했다.
프랑스 혁명(1789년)이 일어나기 전부터 포도주를 제조했던 프랑스의 랑송도 윔블던 대회의 대표적 후원 기업이다. 1977년부터 대회를 후원한 랑송도 슬레진저처럼 코트에 광고는 없다. 하지만 윔블던 경기장과 경기장 사이에 위치한 9개의 와인 바와 야외 서비스 공간을 통해 팬들에게 랑송의 샴페인이 제공된다. 이렇게 랑송의 샴페인과 함께 윔블던 대회의 명물 디저트 스트로베리&크림을 음미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윔블던은 이처럼 미디어 노출을 통한 제품 광고 효과보다 후원사 브랜드 이미지 홍보 효과에 집중했다.
특히 윔블던은 대회 후원사 수도 17개사로 제한해 이 기업들에 장기적으로 윔블던 대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엄선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를 통해 윔블던 대회가 펼쳐지는 올 잉글랜드 론 테니스 클럽은 스포츠 후원에 관심이 있는 기업에 매우 특별한 공간이 된 셈이다.
후원사 입장에서 윔블던 대회는 단순한 광고 창구가 아니라 대회의 권위와 전통을 자사 이미지에 담아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인식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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