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무려 20년 만에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정상에 섰다. 이기면 우승이었던 대만전, 그 부담감을 뚫고 한국의 승리와 우승을 이끈 건 30대 언니들의 투혼이었다.
신상우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6일 오후 7시 30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부 최종전에서 대만을 2-0으로 꺾었다. 이날 승리로 승점 5(1승 2무)를 기록한 한국은 일본·중국과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상대전적 다득점에서 앞서며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이 동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 건 2005년 초대 대회 우승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첫 대회 우승 이후 한국은 번번이 동아시안컵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의 첫 우승 이후 7개 대회에선 일본이 4회, 북한이 3회 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한국은 2015년과 2019년 대회에서만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선 마침내 우승의 한을 털었다. 앞서 중국과 2-2로, 일본과 1-1로 각각 비겼던 한국은 대만과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한국이 21위로 일본(7위), 중국(17위)에 이어 세 번째였지만 시상대 제일 위에 선 건 한국이었다.
앞서 열린 경기에서 일본과 중국이 0-0으로 비긴 덕분에 한국은 '이기면 우승'이라는 조건 속에 대만을 치렀다. 객관적인 전력의 우위는 뚜렷했다. 다만 오히려 우승 타이틀이 걸린 경기에서 나오는 부담감에 흔들렸다. 전반 슈팅 수는 11-0이었으나 정작 결실을 맺지 못했다. 후반 초반 정다빈(20·고려대)이 결정적인 기회마저 놓쳤다.

그 부담감을 이겨낸 건 결국 언니들의 투혼이었다.
후반 13분 강채림(27·수원FC 위민)이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상대 수비수가 뒤에서 무리하게 볼을 빼앗으려다 강채림을 가격했다. 페널티킥 키커로는 1991년생 에이스 지소연(34·시애틀 레인)이 나섰다. 넣으면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지만, 자칫 실축이라도 한 뒤 우승에 실패라도 하면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한 상황. 엄청난 중압감에도 지소연은 정확하게 페널티킥을 차내며 균형을 깨트렸다.
가까스로 균형을 깬 뒤 한국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후반 30분, 또 다른 언니들의 합작골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맏언니 김혜리(35·우한 징다)가 문전으로 땅볼 크로스를 올렸고, 장슬기(31·경주한수원WFC)가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해 대만 골망을 흔들었다. 우승에 성큼 다가서는 결정적인 골이었다.
결국 한국은 이 2골을 잘 지켜낸 끝에 대만을 2-0으로 완파했다. 동아시안컵 우승의 한을 무려 20년 만에 풀었다. 오랜 시간 여자대표팀 주축을 이루고도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어느덧 30대가 된 언니들이 오랜 기다림을 끝냈다. 한국 여자축구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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