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호(38·은퇴)를 시작으로 김하성(30·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김혜성(26·LA 다저스)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히어로즈의 유격수 라인업은 한국 야구 역사에서 손꼽히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 자리에 신인 선수가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화려한 커리어를 써낸 어떤 선배들보다도 더 많은 기회 속에 쾌조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 어준서(19·키움 히어로즈)는 빅리거 선배들의 뒤를 이어 대성할 수 있을까.
경기고를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3라운드 전체 21순위로 키움 유니폼을 입은 어준서는 103경기에 나서 타율 0.239(280타수 67안타) 4홈런 22타점 40득점, 출루율 0.298, 장타율 0.314, OPS(출루율+장타율) 0.612를 기록 중이다.
주전 선수라기엔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지만 프로 1년차 선수가 주전을 꿰차고 꾸준히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게다가 시즌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10경기 타율 0.344(32타수 11안타)로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는 건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더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히어로즈의 유격수는 한국 야구를 대표할 만한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다. 구단 창단과 함께 강정호가 그 자리를 이어갔고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뒤에는 김하성이 배턴을 넘겨받았다. 강정호는 '평화왕'이라고 불렸다. 매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앞두고는 수상자를 예측하며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는데 압도적 활약으로 이러한 일을 없애줘 평화 무드를 만들어준다고 해 붙은 별칭이다. 강정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4차례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 강정호도 신인이었던 2006년엔 10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듬해에도 20경기에만 나섰고 타율도 2년 연속 1할대에 불과했다. 2008년 히어로즈 창단과 함께 116경기에 나서며 비로소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김하성은 데뷔 시즌 강정호에 가려져 60경기에만 출전했지만 이듬해부터 주전 유격수로 올라섰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연속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강정호에 이어 '평화왕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뒤는 김혜성이었다. 김하성마저 빅리그로 떠난 뒤 유격수를 맡은 김혜성은 곧바로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이후 2루수로 자리를 옮겨서도 3년 연속 황금장갑을 낀 뒤 다저스로 향했다. 그런 김혜성마저도 데뷔 시즌엔 16경기 출전, 타율 0.188에 그쳤다.
김혜성이 2루로 자리는 고민거리였다. 김휘집(NC)이 김혜성의 뒤를 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았고 이듬해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격수 출신 에디슨 러셀을 데려오기도 했다. 지난 시즌 도중엔 김휘집을 트레이드로 NC에 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맞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키움은 내야 자원을 대거 영입했고 올 시즌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어준서를 비롯해 여동욱, 전태현, 권혁빈 등 많은 내야 신인 자원들 중 가장 앞선 건 어준서였다. 팬들 사이에선 '어격수(어준서+유격수)'로 불릴 정도로 벌써부터 키움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격수 자원으로 손꼽힌다.
어준서 스스로도 얼떨떨하다. 지난 9일 선두 LG 트윈스를 상대로 4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 맹타를 휘두르며 팀에 승리를 안긴 어준서는 "(이런 활약을) 전혀 상상 못했다. 시즌 목표가 고척에서 한 번 뛰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정말 행복하게 야구하는 것 같다"며 "오늘이 가장 제일 행복한 하루"라고 미소를 지었다.
시즌 전과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처음에는 프로의 현실을 모르고 자신감 넘쳐하고 제가 뭐라도 된 것처럼 야구를 했는데 겪고 나니 겸손해졌고 제가 부족한 걸 많이 느꼈다. 더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격수는 수비의 꽃이라고 불리는 위치다. 그만큼 까다로운 타구들이 많고 체력 부담도 크다. 신인 선수가 100경기 이상 뛰며 주전 유격수로 도약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받을 만하다. 어준서 또한 수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항상 수비 훈련을 1시간 미리 나와서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모든 선배님께 다 물어보고 그걸 머리에 담아서 플레이하니까 수비가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프로의 무대에서 벽을 느끼기도 했다. 어준서는 "초반에는 항상 공이 오면 무서웠고 오지 말라는 생각도 했다"면서도 "요즘엔 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오라고 한다. 자신감이 넘쳐서 요즘엔 수비가 깔끔하게 잘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강정호, 김하성, 김혜성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선배들이 있지만 함께 한 적이 없는 선배들이다. 현실에서 더 자주 마주하고 현 리그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고 있는 오지환에게 더 눈길이 가는 게 사실이다.
어준서는 "선배님께서 수비에 나가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변수가 있는데 그것까지 다 생각을 하라는 말이 저에게 도움이 됐다"며 "요즘엔 수비에 나가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수비를 하다보니 실력이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훌륭한 선배들처럼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쳤다.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아직 그런 유격수 선배님들을 따라가기엔 멀었다고 생각하고 항상 매 순간 최선의 플레이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느낀다. "아직 수비를 더 보완하고 싶다"며 "타석에서 어떻게 싸울지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비시즌 기간에 수비를 더 향상시켜서 잘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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