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선제압을 할 수 있게끔 본인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4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선발 투수에게 합격점을 부여했다. 김건우(23·SSG 랜더스)가 SSG에 희망의 불씨를 심었다.
김건우는 1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에 선발 등판해 3⅓이닝 동안 49구를 던져 3피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SSG의 비밀병기였다. 1선발 드류 앤더슨이 장염으로 1차전 선발이 무산됐고 미치 화이트에 이어 선발 출격을 명받았다. 중고 신인이나 다름없는 김건우는 시즌 중반부터 선발로 나섰고 특히 시즌 막판 무서운 기세를 보여주며 첫 가을야구에서 중책을 맡았다.
최고 시속 149㎞의 혼신의 힘을 담은 투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에 삼성 타자들의 방망이는 연신 헛돌았다. 1회를 모두 삼진으로 마친 김건우는 2회에는 50홈런 타자 르윈 디아즈, 1차전에서 홈런을 날린 김영웅, 가을 사나이 김헌곤까지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역대 가을야구에서 경기 개시 후 6연속 탈삼진은 김건우가 처음이었다. 더불어 준PO 사상 최다 연속 타자 탈삼진 신기록까지도 새로 썼다.
초반부터 너무 전력투구를 한 탓일까, 타선이 한 바퀴를 돈 뒤 간파가 된 것일까. 4회 급격히 흔들렸다. 구속도 4㎞ 이상씩 덜 나왔고 삼성 타자들은 어렵지 않게 공략에 나섰다. 이재현과 구자욱에게 연달아 안타를 맞고 1사 2,3루에 몰렸고 디아즈에게 2타점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경기 초반부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불펜 투수들을 준비시켜뒀던 SSG는 곧바로 33홀드 투수 이로운을 불러올려 불을 껐다.
5회 타선이 한 점을 더 냈고 필승조를 총 가동한 SSG는 9회초 마무리 조병현이 동점을 허용하며 패배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9회말 김성욱이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1승 1패로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경기 후 이숭용 감독은 김건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건우가 2점을 줬지만 기선제압을 할 수 있게끔 본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이 감독은 "초반에 너무 잘 던져서 4회 정도에는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도 많이 떨어졌고 경헌호 코치가 빨리 움직여줘서 준비할 수 있었다"며 "(교체) 기준점이라기보다는 힘이 떨어졌다고 봤다. 경헌호 코치와 얘기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떨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불펜 투수가) 준비가 됐다고 말해서 바꿨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많은 선발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 이후 확실한 잠재력을 보여줬고 가을야구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 감독은 "건우는 오늘 경기를 통해 더 성장할 것이다. 내년엔 더 과감하게 선발 앞자리에 기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수훈 선수로 인터뷰에 나선 김건우는 신기록에 대해 "내려와서 전달 받았는데 그 부분은 경기 때는 아예 생각을 안했고 끝나고 실감이 났다"며 "2차전에 선발로 나가게 됐는데 선발보다는 첫 투수라고 생각했다. 1차전에 초구 홈런으로 분위기가 넘어간 것이 머릿속에 있어 1회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너무 좋게 나왔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포수 조형우와 호흡을 맞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김건우는 "정규시즌 때도 많이 호흡을 맞췄고 형우가 공을 받으면서 어떤 공이 좋다고 그날 그날 말해줬는데 (오늘도) 초반에 리드를 잘해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가을야구라고 신경 쓸 것 없고 나를 믿고 좌우 타자를 가리지 말고 던지라'고 해줬다. 그래서 더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투구수도 적은 상황이었고 3회까지는 너무도 좋은 투구를 펼쳤다. 4회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김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는 더 강한 투수들이 있었기에. 리드를 안 뺏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다.
SSG가 기대하는 좌완 선발 자원으로 '포스트 김광현(37)'이라고 불릴 만큼 잠재력이 풍부한 투수다. 이날 등판을 앞두고도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신인 투수로서 깜짝 등판해 7⅓이닝 무실점 호투로 팀 승리와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운 김광현이 소환되기도 했다. 당시 김광현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그러한 투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품게 만드는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김광현을 비롯한 선배들도 김건우의 활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김건우는 "선배님들 전체적으로 고생했다고 말해주셨고 '네 역할을 다 했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3차전은 드류 앤더슨, 4차전은 김광현의 선발 등판이 예정돼 있다. 5차전까지 간다면 화이트가 다시 나설 것이 유력하다. 리그 최고 수준의 불펜 투수만 4명이 있고 이외에도 수준급 투수들이 더 대기하고 있다. 김건우가 향후 시리즈에서 기회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건우 또한 "대구로 넘어가서 오늘 경기 흐름을 이어가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많이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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