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로야구 1200만 관중 동원은 한국 프로스포츠의 성장 잠재력을 알려준 하나의 이정표였다. 스포츠 직관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생긴 현상이다. 프로배구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종목 중 하나다. 한국 배구 최고의 스타 김연경(38)이 코트를 떠난 뒤 첫 시즌인 올해 V리그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관중이 몰려 배구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스타뉴스는 설날 연휴를 맞아 V리그 인기의 현황과 과제 등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김연경의 은퇴에 배구계는 지난 시즌 종료 후 차세대 스타 배출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V리그 남녀부 14개 팀의 감독, 코치, 단장, 사무국과 언론사, 주관 방송사, 전문위원, 심판, 기록원 등 약 200여 명의 관계자가 모여 진행된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에서는 2년 연속 1000만최고 관중을 돌파해 프로 스포츠의 산업으로서 잠재력을 보여준 프로야구 관계자가 강연자로 초빙되기도 했다. 몇 시간에 걸친 논의는 "선수들은 기량 향상에 힘쓰고, 연맹과 구단 관계자는 미디어에 조금 더 적극적이고 친화적으로 나서야 한다"로 귀결됐다.
최고 화제 인물은 '몽골 출신' 인쿠시
하지만 정작 프로배구 V리그 2025~2026시즌 최고 화제의 인물은 김연경처럼 기량이 뛰어난 자국 선수가 아닌 자미얀푸렙 엥흐서열(21·등록명 인쿠시)이 꼽힌다. 인쿠시는 목포여상을 통해 한국으로 배구 유학을 온 몽골 출신 아웃사이드 히터다. 올 시즌 아시아 쿼터 트라이아웃에도 도전했으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 그에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MBC 예능프로그램 '신인 감독 김연경'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쿠시는 김연경과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이며 차츰 성장했고, 그 모습을 본 정관장이 지난해 12월 공식 영입했다.
'인쿠시 효과'는 대단했다. KOVO에 따르면 상반기(1~3라운드) 기준 인쿠시 영입 전·후를 비교했을 때 정관중의 평균 관중은 약 580명이 늘었다. 정관장 홈구장 충무체육관 만원 관중이 약 3500명이라는 걸 떠올리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시청률에서도 상반기 여자부 톱5 중 정관장 경기가 3개나 이름을 올렸다. 최하위 성적에도 2월 10일 현재 총관중 3만 3000명(리그 평균 3만 3500명)을 돌파하며 상위권 팀 못지않은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최서현 '성장 스토리'에 관심 폭발
이러한 인기를 두고 전부 김연경 덕분이라고 말한다. 김연경의 제자라는 타이틀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같은 팀의 최서현(21)이 누리는 인기는 설명하기 어렵다. 최서현은 이제 막 주전으로 나선 미완의 대기이지만, 배구장에서는 억대 연봉의 언니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스타다. 관련 SNS 조회수도 10만 회를 심심치 않게 돌파한다. 최근에는 커리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인쿠시와 최서현은 '스타는 운동을 잘해야 한다'라는 명제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뜻하는 사례다. 최근 스포츠 팬들은 비록 지금 당장의 실력은 부족할지라도 성장 과정을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최서현도 2023~2024 V리그 1라운드 6순위로 현대건설에 지명된 후 백업에 머물다 올 시즌 정관장에 온 뒤에야 코트에 나섰다는 스토리가 있다.
20대 여성 배구 팬 A씨는 이들의 인기에 "'불꽃야구' 선수들처럼 인쿠시나 최서현의 인기도 여러 매체를 통해 개개인의 성장 스토리가 많이 보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사실 배구도 유입이 쉬운 스포츠는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있으면 그 종목을 잘 몰라도 선수에게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그동안 배구는 그런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부족한 종목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타 마케팅' 부족... 이야깃거리가 없다
실제로 배구 선수가 '일반인'들에게 노출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구단 유튜브는 일반인들에게 한계가 있었고, 예능프로그램은 시청률에 좌우된다. 구단 차원의 홍보나 미디어를 통한 노출도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30대 남성 배구 팬 B씨는 "구단들도 '스타 마케팅'을 한다고는 하는데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낀다. 절대적인 기사량도 아쉽고 이야기도 다양하지 않다. 그렇게 콘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다른 종목처럼 많은 쇼츠에도 충분히 홍보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아직 배구가 익숙하지 않은 신규 팬들은 서사에 여전히 목마르다. V리그 14개 구단의 SNS를 모두 팔로우하고 있다는 배구 팬 A씨는 "최근 야구를 보던 팬들이 겨울에 심심해서 배구장에 오는 느낌도 있다. 그런 배구 뉴비(게임이나 커뮤니티에 새로 들어온 초보자)들을 배구 쪽에서 잡아볼 만한 것 같은데, 배구는 야구처럼 선수 한 명 한 명씩 보는 재미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배구장에서 팬들마다 선수에게 빠지는 이유는 다 다르다. 그런데 막상 이 선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면 기사나 구단 유튜브 같은 정보가 정말 없다. 야구의 경우 스타 선수뿐 아니라 개개인에 대한 인터뷰나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나오는데, 배구 기사는 경기 결과나 그에 따른 수훈선수 인터뷰를 보는 것이 고작이다. 구단 차원에서도 스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는 건 임성진(KB손해보험)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기 전 인터뷰·믹스트존 활용 어떨까
배구 선수들의 미디어 노출이 다양하지 않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기 수가 많지 않고 출전하는 인원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승리 후 MVP 자격으로 미디어 앞에 설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다. 경기 전 인터뷰는 KOVO 규약 제48조에 따르면 경기 시작 80분 전부터 60분 전까지 20분간 자율적으로 진행이 가능하지만, 조건이 있다. 선수들의 경기 준비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경기 전 인터뷰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현장 지도자들도 있어 어느새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 됐다.
베테랑 선수 C는 "솔직히 내가 신인 때는 소리조차 내기 무서울 정도였다. 인터뷰 등 무엇이든 할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 D 역시 "경기를 준비하는 데 있어 방해받기 싫어하는 감독님들이 있었다. 지금과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고 떠올렸다.
이제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팬들은 배구를 잘 몰라도 쉽게 스며들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원한다. 현장도 그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V리그 사령탑 E는 "내가 선수일 때는 경기에만 집중하는 문화였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훈련장에서 말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종목들도 워낙 개방돼 있다.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선수들도 스스로 컨트롤만 잘 할 수 있다면 인터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지난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선수들이 믹스트존을 지나가면서 인터뷰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팬들도 그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면서 "감독님들과 구단 모두가 함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선수들은 자신의 발언 자체가 얼마 만큼의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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