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정후(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고우석(디트로이트), 문보경(LG), 류지현 감독까지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도 간절했고 탈락 후 겪을 후폭풍까지도 고려해야 했기에 더욱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4차전에서 7-2 승리를 챙겼다.
이로써 2승 2패를 거둔 한국은 대만, 호주와 동률을 이뤘지만 동률팀 간 이닝당 실점에서 앞서며 조 2위로 8강행 오르게 됐다.
너무도 오랫동안 꿈꿨던 순간이다. 2006년 WBC 첫 대회에서 미국까지 잡아내며 4강 신화를 이뤘던 한국은 2009년엔 본선 진출 후 쿠바와 멕시코를 잡아냈고 준결승에선 베네수엘라까지 제압하며 준우승을 달성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까지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 했던 한국 야구는 그 후 국제대회에서 끝없는 추락을 했다.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을 이루기도 했지만 최정예 전력으로 나서는 WBC에선 2013년과 2017년, 2023년까지 3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을 겪었다.
특히 2020 도쿄 올림픽과 2023 WBC에선 태도 논란까지 일으키며 야구 팬들의 싸늘한 시선과 맞이해야 했다. 많은 연봉을 받지만 태도나, 실력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과거와 같은 영광을 재현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프로야구가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소비되며 2024년 1000만, 지난해 1200만 관중 시대를 열었으나 야구계에선 긴장을 내려놓지 않았다. 허구연 KBO 총재를 바탕으로 국제대회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등 갖가지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은 인기라고 경각심을 느꼈다.
그러나 김하성(애틀랜타)과 송성문(샌디에이고)이 일찌감치 낙마했고 엔트리 발표를 전후해 문동주(한화)와 원태인(삼성)에 최재훈(한화),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까지 이탈했다. 평가전을 통해 나타난 불펜진에 대한 우려는 물론이고 선발진까지 붕괴됐다는 우려가 나왔다.
체코전 기분 좋은 승리(11-4)로 시작했으나 일본을 상대로 전력투구를 한 끝에 석패(6-8)했고 호주에도 잡힌 대만을 상대로 연장 끝에 패(4-5)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초반부터 선수들은 집중력을 발휘했고 2회 문보경의 투런 홈런과 3회 이정후와 문보경의 연속 적시타에 이어 5회 다시 한 번 문보경이 타점을 만들어내며 5점에 안착했다. 이대로 실점만 없이 끝내면 됐지만 그리 쉽지 않았다. 5회 소형준(KT)이 솔로포를 맞았고 다시 한 점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6회 김도영(KIA)의 극적인 적시타로 다시 한 점을 달아났고 불펜진의 호투로 6-1 리드를 이어가던 한국은 8회말 김택연(두산)이 흔들리며 1점을 내줘 9회초 무조건 1점 이상을 내고 9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렸는데 9회 김도영의 볼넷과 1사에서 이정후의 땅볼 타구 때 상대의 실책으로 1사 1,3루에서 안현민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뽑아냈다. 실점 없이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8회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조병현이 볼넷 하나를 허용했으나 점수 차를 지켜내며 극적인 8강 진출을 확정했다.
승리를 결정짓는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문보경은 글러브를 하늘 위로 던지며 포효했고 이정후는 경기 종료 이후 한참 동안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눈시울을 붉혔다. 문보경과 고우석도 펑펑 울었고 과거 한국 야구를 이끌었던 선배들인 오승환과 윤석민, 박용택도 마이크를 잡고는 눈물을 쏟아냈다.
경기 후 류지현 감독은 "여러 투수 운영이나 환경 등 중심을 잡으면서 경기를 운영해야 했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며 "선수들의 집중력이나 염원이 한 데 모인 것 같다. (프로) 코치 생활, 감독 생활, 대표팀 코치와 감독 생활 통틀어 인생 경기"라고 말했다.
평가전부터 불펜에 대한 우려가 나왔고 이번 대회에서도 화끈한 타선과 달리 마운드, 특히 불펜진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실점까지만 허용되는 마지막 경기에서 대표팀 선수들은 투혼을 보이며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류지현 감독은 "투수 15명이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이고 오늘 만큼은 투수력으로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긴장감 속에도 젊은 선수들이 이겨냈다"고 투수들을 칭찬했다.
사이판 1차 캠프 때 코칭스태프들은 하나 같이 마이애미로 향하는 걸 목표로 하겠다고 외쳤다. 선수들도 이번 대회에서 홈런을 칠 때마다 마이애미를 상징하는 'M'자 모양의 풍선을 들고 세리머니를 했고 안타만 쳐도 '비행기 세리머니'를 펼치며 8강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젠 단판 승부다. 매 경기를 호주전 같이 치를 수 있게 됐다. 손주영(LG)의 교체 선수로 당초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부상으로 이탈했던 세인트루이스 주전 마무리 라일리 오브라이언의 합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자신감을 끌어올린 대표팀에게 단판 승부는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 류지현 감독도 앞서 "단판 승부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8강에만 갈 수 있다면 더 높은 꿈을 꿔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설움을 끝낸 한국 야구 대표팀이 이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번 WBC의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