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한화 이글스전. 1-1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11회초 무사 1루에서 한화 노시환(26)이 두산 투수 최지강(25)의 투구에 왼 팔꿈치를 맞았다. 초구 시속 147㎞ 패스트볼이었다.
팔꿈치를 부여잡고 쓰러진 노시환은 이내 일어나 1루로 걸어나갔다. 마운드의 최지강은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노시환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노시환은 두 손을 내젓고 "어어어" 하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했다.
맞힌 투수와 맞은 타자간의 훈훈한 소통 속에 경기는 탈 없이 진행돼 11회초와 11회말 나란히 2점씩을 주고 받는 짜릿한 승부 속에 3-3으로 마무리됐다.

# 조금 다른 풍경도 있다. 지난 5월 3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의 경기 6회말. 삼성이 6-2로 리드하고 있었으나 앞서 이틀간 두산이 각각 3-7, 1-6으로 뒤지다 연달아 만루 홈런으로 역전승했기에 두 팀 모두 안심도 포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타석에 선 삼성 구자욱(33)이 두산 투수 이용찬(37)의 초구 143㎞ 직구에 오른 종아리를 맞았다. 1루로 나간 구자욱을 바라본 이용찬은 "왜왜왜"라며 언짢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구자욱도 무언가 중얼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경기는 더 이상 불상사 없이 삼성이 9-4로 승리했다. 양팀 선수들이 관중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도열했을 때 이용찬과 구자욱이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따로 만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두산 양의지(39)와 손아섭(38)도 옆에서 지켜봤다. 짧게 이야기를 마친 뒤 구자욱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양의지와 이용찬은 구자욱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 직후 취재진과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한 구자욱은 "부상 부위 때문에 좀 많이 예민하기도 하다. (과거) 종아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쉰 적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경기의 일부니까 잘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럴수록 멘탈을 더 다잡고자 한다. 승부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 몸 맞는 공이 나올 때마다 타자와 투수는 서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타자는 부상 걱정 때문에 깜짝 놀라고, 투수는 고의성이 없었는데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바꿔 생각해 봄)'다. 투수는 '타자가 놀랐겠다. 미안하다'는 마음을, 타자는 '투수가 일부러 맞힌 것도 아니고 실수했을 뿐인데'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최근 KBO리그의 인기 폭발에는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강조하는 '클린 베이스볼'도 큰 몫을 해내고 있다. 서로 동업자 의식을 잃지 않고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펼치면서 가족 팬과 젊은 여성들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끌어모으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고의성 짙은 빈볼로 인해 벤치 클리어링과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볼썽사나운 풍경이 심심찮게 연출됐다. 그러나 이제는 몸 맞는 볼 직후 투수가 사과하고 타자는 받아들이는 모습이 KBO리그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았고, 외국인 선수들조차 이를 따라하고 있다.


# 지난 3월 31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KT 위즈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5회초 한화 엄상백(30)의 투구가 KT 허경민(36)의 헬멧을 스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안경과 헬멧이 벗겨진 채 그라운드에 쓰러진 허경민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헤드샷 퇴장을 당한 엄상백도 타석으로 다가와 놀라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허경민을 지켜봤다.
약 2분 동안 누워 있던 허경민은 다행히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어섰다. 그러더니 곧바로 옆에 서 있던 엄상백의 팔을 왼손으로 어루만졌다. 마치 '괜찮다. 너무 걱정 마라'고 위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도 크게 놀랐음에도 후배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은 것이다.
허경민과 엄상백 모두 '역지사지'를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분명 KBO리그의 자랑으로 팬들에게 오래 기억될 만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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