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월드컵 현장은 환경과 싸움이다. 비단 선수들뿐만 아니라, 취재진도 마찬가지다.
15일 오전(현지시간) 대표팀 취재를 위해 치바스 베르데 바예 훈련장을 찾았을 때, 본 기자의 몸은 이미 정상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체코전 영웅 오현규가 경기 당일 맞닥뜨렸던 그 가혹한 신체적 고통이 고스란히 찾아온 것이다. 물론 나라를 대표해 피치 위에 서는 대표팀 선수들이 느끼는 중압감에 본 기자의 스트레스를 감히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몸에 가해진 타격만큼은 실로 엄청났다.
사실 당일 새벽부터 조금 속이 안 좋다는 미세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화근이었다.
치바스 베르데 바예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심한 구토 증세까지 동반되면서 도저히 취재진 무리에 섞여 전술 훈련을 지켜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디어와 선수단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훈련장 안으로 출입하지 않은 채 밖에서 홀로 버텨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단 듯한 묵직한 느낌이 전신을 짓눌렀다.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현장을 버텨낸 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고열 증세가 온몸을 덮쳤고, 침대에 쓰러져 무려 2시간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눈을 뜰 기력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마는 땀으로 가득 찼다. 오현규가 경기 당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며 "도저히 못 뛰겠다"고 호소했던 최악의 상태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몸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를 구한 것은 대표팀의 '비밀 병기'였다. 대한축구협회 측의 빠른 주선으로 송준섭 박사가 직접 처방에 나섰다. 체코전 당일 오현규를 극적으로 회복시켰던 의무팀의 노하우, 이른바 '오현규 테라피'가 기자의 몸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현장에서 본 기자의 상태를 진단한 송준섭 박사는 기자의 증상이 오현규와 정확히 같은 증상이라고 짚었다. 그러고는 "지금 처방하는 게 그때 사용했던 그 비밀 레시피 중 하나"라고 슬쩍 귀띔했다.
물론 송 박사가 앞선 인터뷰에서 엄밀히 밝혔듯 이 구체적인 치료 방법과 프로세스는 홍명보호만의 '비밀 레시피'다. 본 기자 또한 대표팀의 보안 사항인 만큼 구체적인 비결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려 한다.
분명한 것은 그 효과가 매우 좋았다는 점이다. 처방을 받은 뒤에는 추가적인 탈수를 막기 위해 일체의 식사 없이 오로지 전해질 음료로만 버티고 있다.
속은 완전히 비었지만, 효과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송 박사의 집중 케어와 전해질 복용이 시작되자 온몸을 불태우던 고열이 빠르게 해결되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증상이 워낙 빠르게 나아진 덕분에 오현규가 낮부터 마법처럼 컨디션을 회복해 결승골을 터뜨렸던 '12시간의 기적'을 나 역시 그대로 경험했다. 약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몸이 확실하게 나아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극전사들을 지키는 의무진의 능력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뼈저리게 체감한 순간이었다.
치료를 마친 뒤 송 박사는 "고지대인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특성상 선수들에게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탈수열과 각종 돌발 질환, 부상 등을 이미 사전에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었다"면서 "이를 대비해 파트별로 정교한 맞춤형 치료법과 여러 약 등을 멕시코 입국 전부터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전했다. 이에 오현규에 이어 기자까지 단 하루 만에 살려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피치 위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는 것은 선수들이지만, 그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구 반대편 가혹한 고지대 환경에서 완벽한 '비밀 병기'를 준비해 둔 의무팀이야말로 홍명보호가 가진 가장 든든한 보험이자 숨은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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