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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히틀러의 조카로 산다는 것..비극적 최후

'서프라이즈' 히틀러의 조카로 산다는 것..비극적 최후

발행 :

김소연 기자
/사진=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영상 캡처
/사진=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영상 캡처


같은 히틀러였지만 전혀 달랐다.


4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익스트림 서프라이즈 '내 이름은 히틀러'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 국방부에 도착한 한 편지를 소개했다. 미군 입대를 허락해달라는 이 남자의 이름은 히틀러라 더 관심을 모았다.


편지의 주인공은 윌리엄 히틀러로 아돌프 히틀러의 조카였다. 그렇지만 윌리엄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전역을 돌면서 나치 를 비판하는 강연을 계속했다. 그가 개최한 강연회는 1년 동안 1500회에 달했다.


윌리엄의 적극적인 행동에도 "그 핏줄이 어딜 가겠냐"며 "삼촌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그의 진심을 받아주지 않았다. 저서 '독일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아돌프 히틀러의 핏줄이 순수 게르만족이 아닌 유대계라고 폭로했지만 이 역시 "삼촌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전부터 반나치즘을 주장했던 윌리엄 히틀러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 히틀러는 "유대인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학대 정책에 반대해 유대인을 도왔다.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 간부 자리를 주겠다"며 회유책을 썼을 정도다.


하지만 윌리엄 히틀러는 이를 거부했고, 아돌프 히틀러의 눈을 피해 미국으로 온 것이었다.


결국 윌리엄 히틀러는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미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윌리엄 히틀러는 아돌프 히틀러의 조카라는 이유로 군 입대마저 좌절됐지만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쓰면서 군대에 입대하게 됐다.


군 생활 당시엔 "독일 스파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고, 총상을 입을 정도로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전역한 후에도 "독일이 망할 것 같으니 미군에 입대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결국 윌리엄 히틀러는 히틀러라는 성을 버리고 스튜어트 휴스턴으로 개명했고, 평생을 숨어 살았다. 1987년 죽음 직전 4명의 아들에게 자식을 낳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튜어트 휴스턴은 "히틀러라는 성으로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 이후 스튜어트 휴스턴의 아들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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