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https://thumb.mtstarnews.com/cdn-cgi/image/f=jpeg/21/2025/08/2025081110300086745_1.jpg)

작품명: 연개소문(테라코타)
작품사이즈 : 250mm + 500mm + 500mm(h)
송경흡 작가의 말
나의 대학교시절... 그 시절은 개인적으로 혼란스런 시대였다.
데모는 일상이고 학교 입구엔 늘 전경들이며, 어떤 때는 백골단으로 불리는 타격대가 학생들을 잡아가던 광경들이 눈에 선한데...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심취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강력한 고대 역사...
특히 고구려 역사에 대한 동경의 이유는 이 혼란스런 정국을 정리해줄 영웅의 출현을 바랬기 때문은 아닐지?
그 시절 나의 마음을 파고든 영웅은 바로 '연개소문'이었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조선상고사' 영향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개소문은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당'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들을 응징했다는 여러 정황들 때문이었다,
신채호 선생의 '갓쉰동전'에 전해지는 그의 무용담에 잠 못 이루고 아울러 당시 유행하던 중국의 tv시리즈 중 " 규염객전 - 당태종 '이세민'과 그의 친구 '규염객'에 관한 드라마 " 역시 연개소문의 무용담에 기반한 것이라는 추측들이 돌면서 연개소문에 대한 동경은 대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졸업 작품으로 연개소문 테라코타 작업을 진행했었다.
장군상 테라코타 작업의 시작이었다.
흘러가는 세월처럼 많은 것들이 바뀌고 연개소문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도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나의 젊은 시절을 지배한 영웅....
연개소문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그런 나의 감상이 극히 일부라도 전해 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내가 테라코타 작업을 진행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기를 대표하는 강경파 권신이다. 642년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반대파 귀족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했으며 대막리지라는 관직을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그 직에 올라 집권했다.
이후 연개소문이 신라, 당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고구려와 신라, 당나라 사이에는 수 차례 전쟁이 일어났다. 연개소문 생전에는 계속해서 승전했지만 사후 권력을 물려준 세 아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당 태종 이세민과 으뜸 무장이었던 소정방에게 비참한 패배를 안겨 줄 정도로 당대 손꼽히는 명장이었다. 그의 필생의 목적은 당을 굴복시켜 고구려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당나라의 침공을 방어하는 동시에 침공하여 당태종 이세민을 사로잡을 계획까지 시도한 웅대한 기상을 품었던 영웅이었다, 연개소문과 이세민의 전투는 범유목기마세력(고구려-백제 vs 당-신라-돌궐)의 '대칸' 지위를 놓고 펼쳤던 싸움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천개소문 또는 연개소문
대중에서 널리 쓰이는 이름은 '연개소문(淵蓋蘇文)'이지만 당시 한반도는 '한문식 인명'과 '순우리말 인명'이 혼재하는 과도기였다. 정사의 기록에는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고 나오며 원래 이름이 '연개소문'이라는 것은 당나라의 피휘 문화에 근거한 후대의 추측이다. 당나라의 기록인 구당서·신당서의 '천남생묘지명'에는 연씨 가문의 성씨가 '천'(泉)씨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사'에도 이 내용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삼국사 '천개소문 열전'에서는 연개소문의 이름을 '개금(蓋金)'이라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 기록인 '일본서기'에도 연개소문이 '개금'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연개소문의 성씨가 연씨라는 설은 18세기에 이르러 국학자 안정복이 '동사강목'에서 처음으로 주장했다. 삼국사 '신라본기'에는 '고구려의 대신인 연정토가 신라에 투항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연개소문의 성씨인 '연(淵)' 또는 '천(泉)'은 한문식 성이라기보다는 고유어를 훈차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신채호의 연개소문 평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하고 싶은 인물이 '연개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9백년 동안의 장상 대신들뿐 아니라 고구려 9백년 동안의 제왕도 가지지 못한 권력을 쥔 사람이다. 그는 고구려 9백년 이래로 전통의 호족공화(豪族共和)의 구제도를 타파하여 정권을 통일하였고, 장수왕 이래 철석같이 굳어온 서수남진(西守南進) 정책을 변경하여 남수서진(南守西進) 정책을 세웠고, 그래서 국왕 이하 대신 호족 수백 명을 죽여 자기의 독무대로 만들고, 서국(西國) 제왕 당태종(唐太宗)을 격파하여 지나 대륙의 침략을 시도했는데, 그 선악현부(善惡賢否)는 별문제로 하고 아무튼 당시 고구려뿐 아니라 동방 아시아에 전쟁사 중에 유일한 중심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또 "나는 (갓쉰동의 전설)이것을 연개소문이 지나를 정탐한 전설의 일단(一段)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갓쉰동은 곧 개소문(蓋蘇文)이니 개(蓋)는 갓으로 읽고, 소문(蘇文)은 쉰으로 읽을 것이며…"라고 연개소문에 대한 애정을 듬뿍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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