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서 출신 배우 조성규가 여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조성규는 14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내 여동생은 이제 떠나고 없지만, 지난 일이라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너무나 애틋했기에 억울한 죽음이었다. 용기 내어 글을 올려본다.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해서다"라고 밝혔다.
그는 자기 여동생이 작은 사업을 하던 도중 동업자가 어려움에 닥쳐 그의 보증을 섰다며 "동업자는 내 여동생에게 채무를 몽땅 떠안기고 어디론가 줄행랑쳤다"고 말했다. 이어 "내 여동생에게 채무를 떠넘기고 도망간 그 지인은 연락도 안 돼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을까. 평소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여동생이 술도 마셨다. 그래도 한 핏줄이라고 오빠에게 전화해 울면서 자신의 처지를 말하더라"고 하소연했다.
또한 "여동생이 자신의 사업을 접고 여기저기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보험과 적금을 든 게 있었다. 보험은 올해가 만기라 우체국에 갔지만 여동생이 지인의 보증을 서 준 게 있어서 그 채무를 먼저 갚지 않는 이상 여동생의 보험과 적금은 만기든 원금이든 찾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며 "보증 채무도 수억이나 된다는데 어떻게 갚나. 그것도 남이 저지른 일인데..."라고 털어놨다.
조성규는 "내 여동생은 지인 보증 잘못 섰다가 그 스트레스로 억울하게 죽은 거다. 진짜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여동생 그 지인... 어디에 살든 끝까지 쫓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게 사람 사이가 아니냐"라며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사람 사이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며 살아온 제 여동생만 죽은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괴롭다"고 전했다.
한편 조성규는 1992년 KBS '가시나무 꽃'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1995년 '젊은이의 양지'에서 땡초로 이름을 알렸으며 '첫사랑', '사랑하세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등 백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 조성규 글 전문
어쩌면 제 여동생은 이제 떠나고 없지만... 지난 일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애틋한 오누이였기에 억울한 죽음이었다.
지난해 8월, 여동생이 암 투병 중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됐고 올해 1월 6일 여동생이 사망하기 전까지 아주 많은 매체에서 그동안의 아픔을 다뤄주시고 사망과 관련해서도 위로와 관심을 줬다. 그래서 이렇게 용기 내어 언론매체에 글을 올려본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해서다.
내 여동생의 병명은 암이었지만 암이 발병하기 전까지는 아주 건강한 여동생이었다. 그렇다면 암이 왜 생겼을까. 내 여동생은 충북 옥천에 거주하며 대전과 천안에 오가며 작은 사업을 했다. 그때 함께 사업하던 지인이 어려움에 닥치자 그 지인의 보증을 섰다. 그런데 그 지인의 사업이 점차 기울자 그 지인은 내 여동생에게 채무를 몽땅 떠안기고 어디론가 줄행랑을 쳤다. 그때가 2016이었다. 내 여동생은 그 지인의 보증을 섰기에 어쩔 수 없이...
그 결과, 내 여동생은 하던 사업도 접고 그 지인이 떠넘긴 보증 채무로 인해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후 내 여동생 통장도 압류가 돼 내 여동생 이름의 통장은 불가능했다. 오빠가 어려울 때마다 제게 보내오는 돈도... 제가 제 여동생에게 보내는 돈도... 여동생의 이름이 아닌 여동생 아는 분의 이름으로 만든 통장으로 주고받고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내 여동생에게 채무를 떠넘기고 도망간 그 지인은 연락도 안 돼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을까. 평소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여동생이 그로 인해 그 얼마나 힘든 일상이었으면 술까지 입에 대고... 그래도 한 핏줄이라고 오빠에게 전화해 울면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때면? 결국엔 그 스트레스로 암까지 걸렸다. 정말이지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첩첩산중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애틋한 오누이 사이로 서로에게 힘과 용기가 되면 살아온 여동생인데... 여동생 죽음을 생각하면, 죽은 지 한 달이 좀 넘었지만, 아직도 밤새 잠 못 이루고 속상하고 원통하고 분통이 터진다.
지난 1월 6일 사망 후 여동생 사망신고 때문에 여동생이 거주하던 충북 옥천읍사무소와 옥천 우체국에 갔다. 여동생이 신용불량자와 지인의 채무를 떠안게 돼 여동생이 자신의 사업을 접고 여기저기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보험과 적금을 든 게 있었다. 보험은 올해가 만기라 옥천 우체국에 갔지만 여동생이 지인의 보증을 서 준 게 있어서... 그 채무를 먼저 갚지 않는 이상 여동생의 보험과 적금은 만기든 원금이든 찾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아니, 보증 채무도 수억이나 된다는데 어떻게 갚습니까, 그것도 남이 저지른 일인데... 또한 제 여동생의 피보다 더 진한 그 돈은??? 정말이지 분통이 터진다.
그렇게 제 여동생은 지인 보증 잘못 섰다가 그 스트레스로 억울하게 죽은 거다. 진짜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여동생 그 지인... 어디에 살든 끝까지 쫓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게 사람 사이가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사람 사이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며 살아온 제 여동생만 죽은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괴롭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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