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PD수첩' 김기덕 편, 그렇게까지 해야했을까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3.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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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D수첩' 화면 캡처


"참으로 민망하고 낯뜨거운 내용입니다."

지난 6일 방송된 'PD수첩' 말미 스튜디오에서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가 한 말이다. 이날 'PD수첩'은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이란 제목으로 그를 둘러싼 성폭력 의혹을 다뤘다. 이미 뜨겁게 화제가 된 예고편에 담긴 대로 충격적인 폭로였다. 제작진과 인터뷰에 나선 3명의 여배우는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당했던 성폭력에 대해 직접 털어놨다.


센세이셔널하고 폭발력있는 보도였다. 논란을 몰고 다니지만 세계 영화계로부터 인정받는 거장의 성추문을 처음 정면으로 다룬 셈이었다. 침묵을 깨고 나선 고발자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이은 충격적인 이야기에 내내 심호흡하며 방송을 지켜봐야 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함께 지켜보며 참담해 했고 분노했다. 닐슨코리아 집계 결과 이 날의 'PD수첩'은 한 주 전보다 시청률이 2배 넘게 뛰었다. 6.9%의 전국일일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의 방송은 성폭력 보도 수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보도 과정에서 말 그대로,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성폭력 보도에 관한 여러 가이드라인이 있다. 성폭력 상황과, 피해자가 입은 폭력 피해 양상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그것이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피해자와 일반 대중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그 자체가 불필요한 상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날의 'PD수첩'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전시한다는 비판을 받던 김기덕 감독의 옛 영화들을 연상시켰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물음도 다시 떠올랐다. 'PD수첩'은 세 명 배우가 들었다는 성희롱적 언사를 그녀들의 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줬다. 또박또박 쓰인 자막도 따라붙었다. 몇몇 대목에선 연기자들을 이용해 재연까지 해 보였다.

선정적일 뿐 아니라 폭력적이기도 했다. 피해자 스스로의 고백이라 해도 이를 기사나 방송으로 옮길 땐 정제가 필요하다. 하물며 전 세대 다수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상파 TV의 기준은 더욱 엄정해야 할 것이다. 용기 내 고백에 나선 이의 상처를 더 자극할 수 있다. 그 고통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시청자들도 간접적인 상처를 함께 입을 수 있다.

'PD수첩'은 "참으로 민망하고 낯뜨거운 내용입니다. 이마저도 피해자들의 증언 중 뼈대만을 전해드린 겁니다. 방송이라 차마 다 공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라는 설명을 보탰다. 제작진의 솔직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이 말한 폭력 자체가 너무도 끔찍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보도라면 표현의 수위와 방법 또한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성범죄의 내용이 아니라, 방송이 '민망하고 낯뜨거워'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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