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영화 '오프로드'의 한승룡 감독, 지수역의 선우선, 철구 역의 백수장 |
자신에게 5억원이라는 거액이 불쑥 통장으로 입금됐다는 상상을 해보자.
너무 많다고? 소박하시기는…. 그럼 그 절반인 2억5000천만원 정도라면?
이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즐겁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돈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애꿎은 '머리통'을 탓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 돈을 어떻게 써야겠다고는 잘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26일 공개된 영화 '오프로드'는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출발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상상처럼 불쑥 자신의 손 안으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사건은 우연히 권총을 손에 쥔 철구가 은행에 침입, 성공적인 '한 건'을 통해 장밋빛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는 '순진하게' 매회 로또 복권을 사는 수고로움 대신 이 '한방'으로 인생역전을 꿈꾼다.
철구는 은행에서 돈을 탈취하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뒤 은행 앞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택시기사 상훈의 차에 오르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상훈은 직장 상사의 지시로 불법대출에 가담했다 옥살이까지 하고 나와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사가 된 인물.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주희의 미래를 위해 이별을 고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주희는 상훈에게 마지막 제안을 한다.
그러나 둘의 계획은 철구의 등장으로 뒤틀리고 상훈은 은행 강도인 철구의 인질이 돼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울에서 목포까지 향하는 길에 일어나는 일들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로드무비라는 장르가 던져주는 잔잔하거나 덤덤한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 이 영화의 매력이다.
상훈과 철구가 하나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창녀 지수를 만나게 되고, 이는 사건의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다.
인생 막장에 놓인 세 사람이 은행에서 탈취한 돈을 두고 각자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오직 돈만이 장밋빛 나날을 보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비루한 현실임에는 가슴이 아려온다.
"이번 영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승룡 감독은 말했지만 '오프로드'는 그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좌절에 더욱 무게를 둔다.
영화 속 호남의 풍광과 색감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본으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 내몰린 막장 인생들의 외침이 아련하게 가슴 한 켠에 울려퍼진다. 상훈이 총에 맞은 철구에게 던진 한 마디 말처럼.
"너무 큰 상처를 입으면 당장은 괜찮은 것 같지만 서서히 고통이 오더라. 참을 수 없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