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서지원 유니, 1월이 되면 그들이 보고싶다

[기자수첩]

김지연 기자 / 입력 : 2008.01.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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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광석 유니 서지원


'새해'는 '희망'이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런데 매해 1월이 되면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1996년, 그해 1월은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소식이 한해의 출발을 알렸다.

바로 95년 데뷔해 1집 타이틀곡 '또다른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며 스타로 발돋움한 서지원, 그의 자살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는 1996년 1월1일 유서를 남긴 채 약물 과다복용으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왜 자살을 택했을까. 서지원은 일기장을 통해 "2집 앨범 녹음을 끝내고 활동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자신도 없고 군대도 가야하며 사무실 운영과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도 너무 벅차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홍보를 잘해 2집 앨범을 성공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2집을 성공시켜 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에게 너무도 과중했다.

다행히 서지원의 바람처럼 2집 타이틀곡 '내 눈물 모아'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전히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있으며, 그를 사랑했던 팬들은 여전히 그를 추억한다.

서지원의 죽음으로 놀란 가슴을 추스리기도 전인 그 해, 1월 또 한 가수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많은 음악팬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일어나' '사랑했지만'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90년대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던 김광석이 96년 1월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늘로부터 꼭 12년 전 일이다.

아픔이 베어 있는 김광석의 애절한 목소리 만큼이나 슬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이름 석자를 기억한다. 사망 12주기를 맞아 김광석이 1991∼1995년까지 1000회 이상 공연을 가졌던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과 콘서트 '김광석 다시 부르기'가 열리는 이유다.

이와 함께 신세대 가수 겸 배우였던 유니의 죽음이 지난해 우리를 또 한번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유니는 2007년 1월21일 인천 마전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세상과의 연을 끊었다. 채 피지 못한 스물여섯 젊은이의 죽음이었다.

생전 이런 저런 악플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유니의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만 기억된다.

인간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떨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한다. 하지만 왜 기회는 늘 위기의 얼굴로 찾아온다 하지 않던가. 힘든 순간을 견뎌내길,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예기치 않은 부고를 받게 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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