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역량 따라 공연규모 차별..日가요계서 배워라

도쿄(일본)=길혜성 기자 / 입력 : 2008.03.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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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일본에서 아레나 투어를 가졌을 당시의 보아


"일본에서는 가수들이 공연장 규모를 '스텝 업(Step up)' 하면서 올라가는 시스템이 일반화돼 있죠."

한일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가수 윤하와 지난 26일 오후 일본 시부야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던 윤하의 일본인 스태프의 말이다.


이 스태프는 "일본에서 윤하의 10대 시대 시절을 정리하는 스페셜 앨범이 26일 나왔는데, 이제부터는 윤하가 보다 많은 라이브 공연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가수들이 공연장의 규모를 차근차근 '스텝업' 하면서 올라가는 시스템이 있다"며 "윤하가 다음 앨범을 낼 때는, 2000~30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언제든지 공연을 가질 수 있는 가수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스태프의 말대로 일본 대중음악계에서는 가수들의 활동 경력 및 인지도 등에 따라 공연장 규모가 확실히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인정받는 가수로 성장하는 게 보통이다.


대부분의 일본 가수들은 데뷔 직후나 인지도가 낮을 때에는 전국 각지에 마련된 1000여석 정도의 공연장에서 프로모션을 가지며 대중음악 팬들 및 미디어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또한 프로모션 및 앨범의 성공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3000~5000여석 규모의 전국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이 프로젝트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내고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오를 수 있게 됐을 때에는, '공연장 규모 확장'의 마지막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전국 아레나 투어를 갖는다. 각종 공연과 행사 및 스포츠 이벤트 등을 벌일 수 있는 대형 실내 공간에 해당하는 아레나는 일본 여러 도시에 마려돼 있으며, 한 번의 공연에 1만여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현재 한일 양국 모두에서 톱가수로 대접받고 있는 보아도 지난 2001년 일본에 첫 발을 내딛은 직후부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및 자신의 일본 음반사인 에이벡스와 함께 일본 현지에서 '공연장 규모 스텝업' 전략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전략을 대성공을 이끌어 냈다. 보아는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4번의 전국 아레나 투어를 성황리에 가질 만큼 대형가수로 성장한 것이다.

보아는 한 번의 아레나 투어로 매년 10만명 이상의 일본 전역의 팬들과 만날 수 있게 되면서, 일본 대중음악 관계자들 및 팬들로부터 가창력, 무대매너. 대중성까지 한꺼번에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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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일본에서 2번째 전국투어를 가졌던 동방신기의 당시 공연 및 새 앨범 홍보 차량


한국 최고의 인기 아이돌 그룹이란 명성을 뒤로 하고 약 3년 전 일본에 진출한 뒤, 현지의 소규모 공연장에서부터 프로모션을 시작하는 등 에이벡스 및 SM재팬 관계자들과 함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취했던 동방신기도 오리콘 차트 1위 달성 등에 힘입어, 3번째 일본 전국 투어를 맞는 올해 마침내 아레나 투어에 돌입했다.

지난 19, 20일 요코하마 아레나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아레나 투어에 돌입한 동방신기는 26일과 27일에는 오사카에서 콘서트를 가졌으며, 오는 5월 초까지 후쿠오카, 히로시마, 나고야, 센다이, 삿포로, 사이타마 등 일본 전역을 돌며 총 17차례에 걸쳐 아레나 투어 콘서트를 펼친다. 이번 투어로 일본 전역의 15~20만 팬과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지난해 국내 남성 아이돌 그룹계를 평정한 빅뱅도 28일 오후 7시와 29일 오후 2시, 6시 등 이틀 간 총 3회에 걸쳐 일본 도쿄돔시티 내에 위치한 JCB홀에서 일본 내 첫 단독 콘서트를 가지며 '공연장 규모 스텝업'의 과정에 돌입한다.

빅뱅이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1회 공연에 3000여명의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는 비교적 소규모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갖는 것도, '공연장 규모 스텝업' 과정을 통해 일본 현지에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차근차근 높여가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빅뱅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측이 세븐의 일본 내 매니지먼트에 도움을 준 일본의 유명 기획사 중 한 곳인 언리미티드와의 교류를 통해, 일본 대중음악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일본 가수들 뿐 아니라 한국 가수들도 '공연장 규모 스텝업'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가수들의 실력과 인기를 동반 상승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는 평가다. 가수들이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높은 뒤에야 공연을 펼치는 수 있는 게 보통이고, 설령 공연을 갖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현재 위치에 걸맞은 공연장 선택도 쉽지 않다.

아티스트를 키우기보단 만능 엔터테이너를 탄생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는 국내의 가수 발굴 및 양산 시스템도 이러한 문제 발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 부족 등 인프라의 부재가 국내 가수들이 '공연장 규모 스텝업' 과정을 밟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국내 가수들이 콘서트의 장소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장소 중 한 곳인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의 여러 체육관들도 최소 수천석의 객석이 마련돼 있는 중급 규모 이상의 공연장인 관계로, 공연을 통해 아티스트로의 성장을 원하는 신인급 가수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소극장의 메카'로 통하는 서울 대학로 및 홍대에도 신인급 가수들이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장소들은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확대된다.

"일본에는 가수들이 팬들과 만날 수 공연장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면 문제"라는 한 일본 대중음악 관계자의 말은, 지금이라도 가수들이 마음껏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인프라 확장에 국내 가요계 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관계자들도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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