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순위표 속, 금 간 가요계의 얼굴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8.03.28 08:43
  • 글자크기조절
image


일전, 한 인터넷 신문에 게재된 글을 읽었다. '음원-女, 음반-男으로 분리된 가요계'라는 타이틀이었다. 한 포털의 연예 주요 뉴스로 올라온 그 글의 요지는 이랬다. 남자 가수는 음반 판매에서 두드러졌고, 음원 판매는 여가수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최근 음반을 발표한 거미가 이러한 공식을 타파해 달라는 기대도 담겨있었다.

일면 공감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가수의 성별이 반드시 그러한 공식의 중심에 서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 글을 통해 현상의 정확한 분석과 결론을 결정적으로 내리지 못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음원과 음반 판매 유통의 기본적 시각은 이렇다. 음원 판매는 한곡에 승부를 걸어야하는 운명이다. 그래서 다소 자극적이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거나 혹은 감성적이다. 아무래도 트렌드를 의식하는 경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10여곡이 담긴 음반은 뮤지션의 메시지가 담긴 음악적 성취가 오롯이 담겨있다. 양질의 퀄러티를 획득하고 있다. 소장가치로서의 무게가 짙다. 음악팬들에게 간택된다. 그 진정성에 손길이 가는 것이 쉽게 인정된다.

이러한 규정도 업계에서 인정되는 통념일 뿐이다. 예외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충성도를 자랑하는 일부 아이돌 그룹이나 기획형으로 조합된 트렌드 가수들이 있으니까. 명확한 규정이 쉽지 않다. 특히, 음원 판매는 네티즌들에게 유독 사랑을 받는 가수가 곡을 발표할 때 마다 차트를 선점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곡이 좋아서 그렇겠지 하면서도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요와 유행은 떼어낼 수 없는 상관을 갖는다. 그러나 가요가 유행에 종속돼 길을 잃고 표류하는 일은 기형적이다. 1990년대 가요는 다양성을 충족시키면서도 윤기가 흘렀던 최고의 절정기였다. 음악이 소중하던 시대였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의 집약은 그 모든 것들을 상실케 했다. 지난 2000년 이후 IT강국으로 거듭난 대한민국의 가요는 소중함을 상실할 만큼 풍요로운 음악듣기를 제공하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가요는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진화했다. 음악적 역량과 개성적인 가창보다 어느 정도의 끼를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 연예인 가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시청률과 가십성뉴스에 매달려온 미디어 관계자들의 무책임도 큰 일조를 했다.


가요 순위표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더 비극적인 현상이 눈에 밟힌다. 우선 월간 순위 10위권이라 그래봐야 음반 5천여장이 팔려나가면 가능한 일이다. 순위를 운운할 만큼 수치로서의 가치는 이미 상실했다. 더군다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지난 한 해 음반 판매 순위권 안에 단 한명의 신인 싱어송라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간과하기에는 우리 가요계의 미래가 위태로워 보인다. 이미 가요가 트렌드의 소품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금이 간 가요계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는데, 언론은 90년대 싱어송라이터들의 귀환과 성공으로 가요계가 고무되었다고 열변한다. 더 이상 일그러져서는 안 된다.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