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어린이까지 좋아했던 단골 마초영웅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04.0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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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등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가 남긴 언어적 인상은 컸다. 거칠고 짧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이후 '조폭영화'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오래전 조폭들의 언어는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였다. 그 중심에는 바로 '팔도사나이'(1969)의 전라도 출신 '용팔이' 박노식이 있다. 알다시피 배우 박준규의 아버지이기도 한 박노식은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쾌남' 중 하나다.


'팔도사나이' 이후 그의 별명이 된 용팔이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더불어 검은 장갑의 호쾌한 액션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는 시대를 풍미했던 또 다른 액션 스타들인 이덕화의 아버지 이예춘, 허준호의 아버지 허장강, 그 외 장동휘, 신영균, 장혁의 다음 세대지만 마도로스 박이니 상하이 박, 혹은 용팔이라는 구체적인 캐릭터로 기억된 배우라는 점에서 좀 더 남다른 친근감이 있는 배우였다.

물론 그 친근감에는 전라도 사투리라는 끈끈한 언어적 매개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실제 전남 순천 출신인 그가 용팔이로 등장하면서 그 전라도 사투리는 한때 '친구' 이후 분위기만큼이나 당시 꼬마 팬들이 무던히도 따라하던 생활언어가 됐다.

용팔이 이전에도 박노식은 액션영화의 단골 마초영웅이었다. 6.25 전쟁 후 악극단에서 가수 및 연기 활동을 했던 그는 '격퇴'(1956)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 '이대로 죽을 수 없다'(1964), '마도로스 박'(1964), '배반자 상하이 박'(1965) 등 제목만으로도 박력이 느껴지는 일련의 액션영화들에서 그는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에 능글능글하면서도 의리로 똘똘 뭉친, 그래서 행여 배신을 하더라도 바로 마음을 고쳐먹는 영웅으로 등장했다. 종종 일제치하 불굴의 독립군으로 출연하던 시기도 이 즈음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1960년대 이후 거의 집밖으로만 돌며 1년에 10편 넘게 영화를 찍는 일도 부지기수였으니 '초등학생이던 아들(박준규)이 어느 날 일어나보니 까까머리 중학생이 돼있더라'는 얘기도 그리 놀랄만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용팔이가 인기를 끌면서 '돌아온 팔도사나이'(1969)도 바로 만들어졌고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 '역전 출신 용팔이'(1970) 같은 아류작도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용팔이 뿐만 아니라 제목에 '명동'이나 '홍콩', '상하이'가 들어가는 어지간한 영화들도 꼭 그를 거쳐 갔다.

박노식의 인기에는 묘한 데가 있다. 물론 그는 30대 때부터 인기 스타였지만 1930년생인 그가 용팔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거의 마흔 살이 된 다음부터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악역을 도맡아했던 개성 넘치는 선배 허장강처럼 유독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한국영화사의 원조 마초라고 할 수 있는 장동휘나 신영균이 고뇌하는 영웅들이었던 데 반해 그는 수시로 '아 긍게(그러니까)' '어이쿠야' '옴마야' '어쩌코롬해야 쓸까잉' '요놈 좀 보소'를 즐거이 내뱉으며 몸 개그를 아끼지 않던 웃기고 빈틈 많은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박노식이 실제 아들 박준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하는 영양제 CF가 장안의 화제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데뷔 전 악극단 활동 이력에서 보듯 그가 액션 스타이면서도 풍류에 능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그런 이미지에 크게 한몫했다.

액션영화에만 '올인'했던 그는 이후 감독을 겸업하게 된다. '인간 사표를 써라'(1971), '작크를 채워라'(1972), '방범대원 용팔이'(1976),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 등 역시 제목만으로도 그 분위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이 영화들은 이제 희귀한 비디오테이프가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을 뿐이지만 박노식 특유의 땀 냄새 진한 액션과 구수한 대사들이 뒤엉킨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현재 류승완 감독이 만들고 있는 장편(물론 제목만 차용한 것이겠지만)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여름쯤 개봉할 예정이라니 그때쯤 다시 그의 얼굴을 떠올려볼지도 모르겠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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