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시대, 결코 막을 내릴 수 없는 이유

강태규 / 입력 : 2008.04.1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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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추억이다. 라디오를 떠올릴 때마다 지난날의 젊음이 스친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시간 옆에는 라디오가 친구처럼 자리를 지켜주었다.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고 음악을 사랑했다.

그러나, 기술은 오늘을 보존하지 않으려한다.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는 현란하고 자극적이며 새로운 눈요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냈다. 우리 중심에 서있던 라디오의 위력적인 존재감은 이제 미약해졌다. 그렇게 라디오는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묵묵하게 걸으며 우리 곁을 낮은 자세로 지키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커왔고, 라디오 DJ가 곁들이는 음악이야기로 우리의 음악적 정보도 놀랍게 자랐다. 라디오는 친구이자 음악 교과서였다. 새롭고 양질의 음악이 어떤 것인지 음악만으로 우리를 가르쳤던 것이다. 코너마다 지구촌 곳곳의 음악이 흘러 나왔고 라디오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주옥같은 우리 가요는 라디오 청취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음악적 진정성이 통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를 라디오가 굳건하게 지켰다.

험난하고 외롭지만 아직도 라디오는 그 명맥을 숨 가쁘게 이어가고 있다. 1969년에 전파를 타기 시작해 40년 세월을 잇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동안 21대 DJ를 배출했으니 경이롭다. 시대를 대표했던 DJ 박원웅, 이종환, 김기덕과 가수 이수만, 개그맨 서세원으로 이어지면서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14대 DJ였던 이문세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장장 11년 8개월 동안 ‘별밤’을 지켰다. 라디오 시대의 중흥을 일구면서 역사를 아로 새긴 것이다.

TV 음악프로그램이 상업화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도 라디오는 더욱 강한 색깔로 청취자들과 음악으로 대화하며 손을 내밀었다. 18년 동안 청취자들에게 박수 받았던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팝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200여 팀의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자리하는 기록을 남겼다.


뮤지션 김동률은 말한다. 라디오의 매력이 가공되지 않고 진솔한 음악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김동률은 지난 1월 25일 발표한 자신의 5집 음반을 알리기 위해 단 한차례 TV에 출연했다. 그러나 라디오 출연은 음반 발매 75일 동안 무려 50회를 넘어선 사례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라디오는 TV나 언론 매체보다 훨씬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편집에 의해 뜻이 와전될 수 있는 TV와 언론과 차별된다. 라디오는 날 것 그대로 뮤지션의 음성이 전달됨으로써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라디오의 이러한 순기능을 역행하는 움직임도 요즘 눈에 띈다. 서글프다. TV를 표방하는 버라이어티로 라디오의 색깔을 스스로 해치는 진행은 청취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뛰어봐야 TV를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음악이 소중하지 않는 시대에 라디오는 말없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는 여전히 라디오다워야 한다. 언젠가는 대중이 라디오의 담백한 참맛을 깨닫게 될 때, 또다른 인기를 구현할 것이다. 풋풋한 아날로그적 감성과 음악다운 음악이 흐르고 인간적인 정취가 지속되는 한 라디오는 결코 우리 곁에서 멀어질 수 없는 친구다.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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